이준석 '전장연 때리기'에 '혐오정치’ 편승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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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지하철 시위 정치 쟁점화...취재진 몰린 경복궁역 '인수위-전장연 면담' 현장
장애인 지하철 시위 보도 이준석 '전장연 비판' 글 이후 급증
“이준석 혐오 조장 발언에 날개 달아주는 언론 책임 커”

2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혜화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혜화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PD저널=장세인 기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4개월 동안 이어진 지하철 시위의 정당성이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연일 때리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혐오성 발언을 무분별하게 받아쓴 언론의 합작품이다. 

29일 오전 전장연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의 면담이 이뤄진 경복궁역은 면담과 시위를 취재하러 온 수십명의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이날 처음으로 전장연 시위 현장에 왔다는 A 기자는 “이준석 대표 발언도 있고 인수위도 온다고 해서 촬영 차, 현장 확인 차 왔다. 우리 매체에서 전장연 시위를 쫓아가던 것은 아니었고 이준석 대표의 발언이 이슈가 되면서 매체에서도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B 기자도 “그동안 전장연 시위를 챙기진 않았는데 시위 자체가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국민의힘 당 내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는 등 이슈가 되고 있어 챙기러 왔다”면서 “작년 7월쯤에도 지나가면서 관련 시위를 봐서 기사를 내려 했는데 당시에는 큰 이슈가 아니라 쓰지 않았다”고 했다. 

지하철 시위를 '이슈'로 만든 장본인은 이준석 대표다. 25일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전장연 시위를 비판한 글을 시작으로 이준석 대표가 30일까지 페이스북에 올린 '전장연 저격' 게시글은 18개에 달한다. 전장연의 시위를 '정당성 없는 불법시위'로 규정한 이 대표가 연일 날선 발언을 내뱉자 인수위가 수습 차원에서 시위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혐오성 발언'을 언론은 그대로 기사화했다. <이준석 “지하철 점거로 억울함·관심 호소하는 게 문명사회냐”>(세계일보),<오늘도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목소리 낼 권리”vs “민폐” 갑론을박>(서울경제)<“임종 지키러 간다는 시민에 버스 타라?” 이준석, 연일 장애인 단체 비판>(조선일보) 등 이 대표의 SNS를 옮겨적거나 지하철 시위를 찬반 논쟁 거리로 붙인 기사가 포털을 장식했다.  

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시위가 시작된 12월부터 3월 29일까지 ‘장애인 단체 시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총 639건의 뉴스가 나왔는데 이 중 이 대표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25일부터 포털에 송고된 뉴스는 총 308건으로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308건 중 '이준석' 키워드를 포함한 뉴스는 82%(252건)에 달했다. 

장애인 단체 측에 따르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지난 20년간 지속돼 왔고, 이번 이동권 보장 시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했지만 12월 초까지만 해도 투쟁 현장에 오는 언론은 기자 한 두명이 전부였다고 한다. 언론보도 역시 이준석 대표가 이에 대해 페이스북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난 25일 이후에야 급격히 증가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권리예산 인수위 답변 촉구를 위한 삭발 투쟁 시위가 열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권리예산 인수위 답변 촉구를 위한 삭발 투쟁 시위가 열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대표발 장애인 시위 보도는 검증 절차 없이 이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을 퍼나르고 있어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지 않다.    

전장연 시위에 스무 번 넘게 참여했다는 여미애 정의당 서울시당 대변인은 “이준석 대표 때문에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사실 시위는 그 전에도 해왔던 것이고 언론에서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었다”면서 “‘2호선의 후폭풍이 두려워서’라는 이준석 대표의 말도 사실이 아닌 이유가 1999년도에 혜화역에서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를 당했을 때부터 혜화역에서 선전전을 해왔고 3호선도 경복궁역에 인수위가 있다는 상징성 등의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순환선 2호선은 후폭풍이 두려워서 못 건드리고 3호선, 4호선 위주로 지속하는 이유는 결국 하루에 14만명이 환승하는 충무로역을 마비시켜서 X자노선인 3,4호선 상하행선을 모두 마비시키려는 목적”이라는 이 대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이다. 

이재민 전장연 활동가는 “언론에서 지난 2월 심상정 당시 대선후보가 방문했을 때와 이준석 대표 발언 이후에 많이 오고 있는데 장애인 이동권 의제 자체가 언급되는 것은 좋지만 받아쓰는 경향은 큰 문제"라며 "가십처럼 다룰 게 아니라 왜 출근길 시위를 하는지 맥락과 함께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은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에 탑승한 노부부가 사망, 부상당한 일을 계기로 시작됐다. 전장연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약속한 역사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 예산이 편성되지 않자 지난해 12월부터 지하철 타기 시위를 전개했다. 29일 전장연은 인수위 쪽에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을 위한 807억원,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 2조 9000억원 등을 내년도 예산에 편성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준석 대표가 짠 전장연 대 '불편을 겪는 서울시민'의 대립 구도와 여기에 편승한 보도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은 “인수위에서 만나겠다고 하니까 언론의 반응이 커지고, 야당 대표의 선동정치, 배제정치에 시민들도 반응하고 있는데,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끼리 싸운다는 프레임으로 언론이 자극 선동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동권 문제는 40년이 됐는데 예산을 실행해오지 않은 정치인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서재현 전장연 활동가는 “근본적인 책임은 ‘게으른 언론’에 있다. 팩트에 어긋나거나 일방향적인 발언, 혐오나 선동 발언도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관점 없이 그대로 받아 적는 언론의 행태가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며 "발언 전체가 고스란히 나가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따옴표 보도가 계속되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이준석 대표의 혐오 조장 발언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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