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치와 짜임, 그리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기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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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치와 짜임, 그리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기상과 사랑
[홍경수의 방송 인문학 ①] JTBC '기상청 사람들'
  • 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22.04.0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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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지난 3일 종영한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포스터.
지난 3일 종영한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포스터.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난 3일 종영한 JTBC <기상청 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드라마 소재로는 드물게 날씨를 예보하는 사람들의 일과 사랑을 균형감 있게 담아내서다. 예전에도 전문직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들은 많았다. 한국에 유난히 많은 전문직 드라마인 의학드라마나 최근 부상한 법정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학벌과 전문직 선망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 인간의 물리적 목숨과 사회적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극적인 흐름을 담보하는 이야기 특성도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작년 연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은 왕과 궁녀의 사랑이라는 고전적 소재에서 직업인으로서의 궁녀의 삶에 무게중심을 두며 역사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

<기상청 사람들>이 기존의 전문직 드라마와 다른 점은 대중적 선망과는 거리가 있는 ‘쉽게 욕받이가 될 수 있는’ 사회필수요원으로서의 기상인을 선정했다는 점이다. 잘 해야 본전인, 대부분은 비판을 받고 있는 기상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잘 될까라는 질문이 왜 없었을까? 게다가 이 드라마는 흥행을 보장할 출연료가 아주 비싼 톱스타들을 줄지어 섭외하지도 않았다. 박민영, 송강, 윤박, 유라를 섭외해 두 커플의 러브라인으로 까다로운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했을까?

제작진은 날씨와 사랑을 병치시키고 절묘하게 배합해 쳐대는 짜임의 방식으로 이러한 질문에 답한 것으로 보인다. 병치(juxtaposition)란 두 가지의 사물을 함께 배치하는 것을 뜻하며, 미술에서 병치혼합(juxtapositional mixture)은 두 가지 이상의 색을 조밀하게 병치해 혼색되어 보이는 시각 현상을 말한다. 특히 씨줄과 날줄을 다른 색으로 옷감을 짜면 혼색의 효과가 나타나며, 미술 분야에서는 모자이크나 점묘법 등이 병치혼합의 사례라고 한다. 병치혼합을 병치와 짜임으로 구분하고 이를 통해서 드라마를 들여다보자.  

병치와 짜임은 먼저 시그널, 체감온도, 환절기, 가시거리, 국지성 호우, 열섬현상, 오존주의보 등 소제목이 가진 은유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결혼식을 앞둔 관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감지한 주인공의 마음과 불안정한 대기를 암시하는 시그널을 나란히 겹친 대사가 눈에 띈다.

“신호는 단순하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색깔과 진동으로,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은 없다고 계속해서 내게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1화 시그널), “환절기는 애매하다. 옷을 두껍게 입기도 얇게 입기도 뜨거운 걸 먹기도 차가운 걸 먹기도 망설여진다. 그래서 설명할 수 없는 지금 이 감정이 보내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인지, 새로운 계절에 대한 설렘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3화 환절기) 대사는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지도 모르는 변화의 심경을 담아냈다. 시청자들은 온라인상에서 기상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탁월한 은유를 호평했다. 

'기상청 사람들' 1부 화면 갈무리.
'기상청 사람들' 1부 화면 갈무리.

병치와 짜임의 시각적 발현도 눈여겨 볼만 하다. <기상청 사람들>은 드라마로서는 과감하게 다큐멘터리적 요소들을 담아냈다. 제 1화에서는 이 드라마가 다른 전문직 드라마와 차별화된 지점을 극대화해서 보여주었다.

급작스레 떨어진 우박으로 교통사고가 나고, 비닐하우스가 손상되며, 경비행기 기체가 손상되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몽타주로 나열됐다. 또한 호우주의보를 내린 기상청 상황실을 시작으로 고속도로 상황, 퇴근길의 시민들의 분주한 모습, 긴급하게 교신하는 해양경찰, 수문을 열어 방류하는 댐, 배를 정박하는 어민들과 호우 대비하는 공사장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었다.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은 자료화면적 성격의 상황묘사라 할 수 있다. 주연 배우 없는 상황설명 영상을 비교적 길게 편집해서 넣은 데에서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강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최근의 전문직 드라마들이 ‘기승전 러브라인’의 시기를 거쳐 ‘연기자를 통한 직업세계의 묘사’+ ‘러브라인’으로 한 단계 진보했다면, <기상청사람들>은 다시 한 단계를 뛰어 넘어 ‘연기자를 통한 직업세계의 묘사’+ ‘러브라인’+‘연기자 없는 묘사’라는 시각적 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연기자 없는 다큐멘터리적 묘사 덕분에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극대화되고, 주인공의 사랑도 설득력을 부여받게 된 듯하다. 

병치와 짜임의 또 다른 면은 삶에 대한 통찰에서 발견된다. 선영 작가는 JTBC 뉴스와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다. "날씨만큼 종잡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사랑만큼 변화무쌍한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날씨와 사랑 모두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을 견디고 책임지며 성장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터뷰 내용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쇼펜하우어는 세계가 의지와 표상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의지(Wille)란 사람의 뜻이 아니라, 모든 만물을 지금 그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힘, 모든 사물의 내적 원리, 생명의 원리, 생명 에너지, 즉 자연속의 모든 힘을 가리킨다. 이 의지의 작용에 따라 인간에게 인식되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세계가 ‘현상’(Vorstellung)이라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설명이다. 칸트의 물자체와 현상계의 구분에서 영향을 받은 구분이다.

이를 드라마에 적용하면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날씨는 일종의 현상일 뿐,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충동으로서의 에너지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현상이라면, 그 뒤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우주적 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처참하게 끝난 첫 번째 사내연애의 실패 후에도 ‘미친 것처럼’ 보이는 두 번째 사내연애에 과감하게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뜻에 따라 사랑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뜻한 대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국지성 호우가 내리기도 하고, 미세먼지로 가시거리가 뚝 떨어지거나 열섬현상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하는 것처럼,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원망할 수 없다. 다만,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서듯, 사랑에 실패하면 침잠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을 만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모든 존재는 고통을 겪지만 의지의 객관화 단계에서 위쪽에 위치한 인간은 더욱 고통스럽기는 하다. 다만, 반성적 능력 때문에 의지의 현상들의 소용돌이를 인식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깐깐한 어머니와 발목 잡는 아버지, 그리고 상처받은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진하경, 이시우 커플의 험난한 과정 극복은 의지로서의 세계를 인식했기에 가능한 것으로 설명된다.   

JTBC '기상청 사람들'
JTBC '기상청 사람들'

다만, 드라마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하경, 이시우, 한기준, 채유진 네 명을 다양한 방식으로 짝을 이뤄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부분은 견강부회로 보였고 설득력이 떨어졌다. 힘들 때마다 예전 커플이 만나서 고민을 토로하고 상담한다는 설정은 무리수로 보였다.

송강이 갖고 있는 천부적인 기상에 대한 혜안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어릴 적 시우라는 이름을 받았다는 평면적인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관료적인 기상청에서 하급 직원이 과장의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 의견을 거침없이 내놓는 것이 개연성이 있는 것일까? 이혼을 결심했다가 나중에 경고용이었다고 방향을 바꾸는 엄 선임의 아내 이향래의 서사도 불충분했다. 마지막 화에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풍경은 더욱 세계의 의지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기상청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소재를 선택해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와 풍부한 서사를 통해 삶을 묘사한 획기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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