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청춘드라마의 변증법적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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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수의 방송 인문학 ②]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지난 3일 종영한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포스터.
지난 3일 종영한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포스터.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이하 스물다섯)가 끝나고 새로운 주말 드라마 tvN <우리들의 블루스>와 JTBC <나의 해방일지> 두 편이 방송을 시작했다. 희극 판타지에서부터 초사실주의까지 넘나드는 한국 드라마의 미학적 활력(aesthetic vitality)은 놀랄 만하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변방의 섬마을의 내밀한 이야기를 고유어로 풀어내는 파격을 선보였고, <나의 해방일지>는 삼포세대를 연상케하는 산포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막막한 청춘의 삶을 고통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아직 <스물다섯>으로부터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탓인지 새로운 드라마에 푹 빠져들지 못하고 있다. 16화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8주는 시청자의 감성의 사이클과 방송편성의 사이클이 공진하는 시간이다. 8주의 시간이 6번 반복되면 한 해가 지나간다. 1년에 100여 편 가까이 방송되는 미니 시리즈 중에서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되는 것은 3~4편뿐. 그중 한 편이 <스물다섯>이 아닐까 싶다.

IMF 시대에 집안이 망하거나 펜싱부가 해체되어 심대한 타격을 받은 청춘들이 사랑하고 연대하고 서로의 꿈을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스물다섯>은 최종화에서 11.5%라는 높은 시청률을 거뒀다. 양적 성장 못지않게 드라마가 사회에 던지는 서사의 의미는 적지 않다. <스물다섯>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도은 작가의 전작 <WWW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이하 검블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검블유>는 거대 포털 회사 두 곳의 경쟁과 직장인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다. <검블유>는 20여 년 전 한국 드라마의 진부함을 상징하는 이른바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180도로 방향을 바꾼 드라마다. ‘내 안에 너 있다’, ‘애기야 가자’ 등 부유한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이 젊은 여자 주인공을 대상으로 관계 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던 드라마를 그대로 반사(미러링)했다고 할 수 있다. 

<검블유>의 여자 주인공 배타미는 나이 많은 상사고, 남자 주인공 박모건은 낮은 직급에 젊다.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카메라 워킹을 뜻하는 ‘남성적 시선’(male gaze)를 그대로 박모건에게 적용했고, 배타미뿐만 아니라 시청자도 그의 몸을 훑어본다.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성별만 바꾼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성별의 구분도 흐릿하다. 배타미, 차현, 송가경 등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의 이름에서 여성성은 약화되었다. 결말 역시 결혼으로 끝나는 대신 결혼관의 차이로 갈등하고 평행선을 달리는 것으로 끝맺었다. 결국 <검블유>는 기존의 신데렐라 드라마라는 테제에 대항하는 안티테제인 셈이다. 

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tvN
권도은 작가가 집필한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tvN

<스물다섯>은 <검블유> 정도로 남녀의 역할을 전도시키지는 않았지만, 여성을 주체적 의사결정권자로 설정한다. 여성 캐릭터인 나희도, 고유림, 지승완 중 희도와 승완은 이름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소녀 캐릭터라기보다는 소년 캐릭터에 가깝다. 희도는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중학생 같은 명랑함과 활달함이 특징적이고, 승완은 부당한 교사에게 저항하고 자퇴하는 의리와 용기를 선보인다. 반면 백이진은 소녀적 캐릭터, 신데렐라의 모습을 띤다. 

백이진과 나희도의 대사는 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희도: 넌 왜 나를 응원해? 우리 엄마도 나를 응원하지 않는데./ 이진: 기대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자꾸 욕심이 나. 나도 잘 해내고 싶은 욕심./ 희도: 나의 어디가?/ 이진: 모르겠어. 그냥 네가 노력하면 나도 노력하고 싶어져. 네가 해내면 나도 해내고 싶어져. 나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해. 내 응원은 그런 너에게 보내는 찬사야. 그러니까 마음껏 가져.(중략)/희도: 네 응원 다 가질게. 그리고 우리 같이 훌륭해지자.” (4화)  

시대의 풍파 속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성장한다는 주제를 드러내는 대사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가르치거나 지배하는 권력 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남녀 주인공인 평등하게 돕고 응원하는 우정과 연대가 두드러질 뿐이다. 

권도은 드라마의 발전 과정에서 헤겔이 인식과 사물의 발전과정을 설명한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이 연상되었다.(테제-안티테제-진테제(Synthese)의 3단계를 어쩌다 바를 정(正)으로 번역했을까? 바를 정자로의 번역이 기성체제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영향을 미친 듯하다. 명제-반명제-합명제나 정립-반정립-종합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뜻을 살리는 것일 터다.)

기존의 가부장적 드라마가 테제로서 존재하고, 이에 대한 대척점으로 역할 바꾸기인 <검블유>가 등장했으며, 이 둘을 통합하는 결과로서 <스물다섯>을 볼 수도 있겠다. <스물다섯>에는 <검블유>에서 보이는 급진적인 남녀 구분 대신 구분이 무화된 대동의 ‘사람 세상’의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희도: 그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야. 그러니 우리, 힘들 땐 마음껏 좌절하자. 실컷 슬퍼하자. 그리고 함께 일어나자.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 일어나자. 내가 너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 단단한 마음이 될게. 꼭 그렇게 만들게. (5화)

극중 대사에서 남녀의 구분, 너와 나의 구분 대신 ‘우리’라는 대명사와 ‘함께’라는 부사가 빈번히 사용된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여기는 동정(Mitleid)을 바탕으로 가능한 세계다. 유림-지웅-승완의 관계도 어느 한 쪽을 지배하거나 억누르는 관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끼고 돕는 대동의 관계를 선보인다. 대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청춘의 풋풋하고 치열한 시간들이 정제된 대사에 잘 담겼다. 

지난 3일 종영한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난 3일 종영한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물론 이러한 인간관계가 다소 이상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스물다섯>이 진테제라기보다는 진테제로 향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다만,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이데아에 대한 직접적 인식의 과정을 변증법적 인식 혹은 변증법적 대화로 언급한 것을 상기한다면,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제 자체의 진위를 문제 삼으면서 그 전제의 근거와 배경을 캐묻는 단계의 인식의 결과물로 <검블유>와 <스물다섯>을 볼 수 있겠다. 

일부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불러일으킨 두 주인공이 이별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나처럼 아끼고 염려했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상상을 연상시키고,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이 좀 더 따뜻해질 수 없을까라는 메시지로 연결된다. 2022년 한국사회는 어느 곳보다 심한 백래시를 겪었고, 여성 배제의 담론이 정치캠페인으로까지 등장해버렸다. 젠더 갈등은 사회가 안고 있는 리스크가 되어버렸다.

서로가 서로를 ‘이끌고’ ‘응원하고’ ‘서로 자라게 하는’ 사회라면 이렇게까지 배제와 혐오가 만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희도: 옛날에 네가 한 말 기억 나? 내가 널 항상 좋은 곳으로 이끈다고. 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이끄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힘 내. ”(15화)

남의 말은 하나도 듣고 싶어 하지 않은 완고한 우리들을 누가 ‘이끌 수 있을까’?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도그마에 빠진 우리들을 권도은의 드라마가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스물다섯>은 황량한 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찬찬히 다시 보아야 할 사회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청춘드라마답게 젊은 역할의 연기자들인 김태리, 남주혁, 보나, 최현욱, 이주명은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지만, 성인 역할의 연기자들의 캐스팅과 연기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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