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공론장 '유퀴즈', 어떻게 훼손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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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공론장 '유퀴즈', 어떻게 훼손됐나
[홍경수의 방송 인문학③]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훼손된 정서적 공론장, 또는 예능과 산업의 윤리
  • 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22.04.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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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윤석열 당선인 SNS에 올라온 '유퀴즈' 촬영 현장 사진. ©윤석열 당선인 인스타그램
윤석열 당선자 SNS에 올라온 '유퀴즈' 촬영 현장 사진. ©윤석열 당선자 인스타그램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통령 당선자의 출연으로 CJ ENM이 제작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시청자들이 매섭게 눈을 뜨고 있다. 당선자뿐만 아니라 진행자, 연출자, 방송사도 모두 얻은 것이 없는 게임이 됐다. 

문제는 전패의 게임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모처럼 만난 썩 괜찮은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어쩌면 잃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유퀴즈>가 갖고 있던 콘텐츠적 의미를 분석하고 이번 사태의 구조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유퀴즈>는 쉽게 기획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만약 어떤 PD가 “제가 유재석 섭외해서 길거리에서 일반인들을 만나 퀴즈를 맞히면 상금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회사에 제안했을 때, 흔쾌히 환영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선, 섭외가 쉽지 않다. 한 방송사에서 한 프로그램 정도만 진행할 수 있는 유재석의 스타성을 고려한다면 납득이 간다. 두 번째 질문은 아무리 유재석이라 하더라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시간을 재미있게 꾸려갈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세 번째로 <유퀴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독창적인 포맷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유퀴즈>의 아이디어 원천을 MBC <무한도전> ‘길거리토크쇼 잠깐만’에서 찾기도 하지만, 2002년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진행자인 유재석, 김용만이 길거리에서 일반인을 만나 근황 토크를 한 뒤 “이 책 읽으셨습니까?” 묻고는 맞히면 선물로 책꽂이에 있는 책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공동 진행자와 선물이 바뀌었을 뿐 포맷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네 번째로는 “토크가 주를 이루면 시청자들이 지루해할 텐데 시청자의 주의를 어떻게 끌 것인가?”라는 메이킹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유퀴즈>는 네 가지의 의문을 일소에 해결하며 ‘인생 예능’의 경지에 올랐다. 홈페이지에 올려진 기획의도는 다음과 같다. “길 위에서 만나는 우리네 이웃의 삶, 저마다 써 내려간 인생 드라마의 주연들,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실제 <유퀴즈>는 초창기에는 길거리에서 만난 이웃들을 주인공으로, 코로나 이후에는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일구어온 생활인들에게 정중하고 섬세하게 말 걸기를 시도하며 인기를 모았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기 어려운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거나, 가슴이 멍멍해지게 하는 자막은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유퀴즈>가 여타 예능 프로그램과 달랐던 지점은 상업적인 이해관계나 의도를 담지 않고 순전히 시청자의 이야기를 집중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가난하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도 치료해주거나 집을 고쳐주는 방송도 있었다. 요새는 연예인들이 방송사 돈으로 국내외 여행가고 먹고 마시거나 준재벌 3세의 수십 억대 아파트를 소개하거나 가난하지 않은 연예인들 집 정리를 도와주는 방송들이 나온다. 방송들이 낯설다." 2021년 온라인에 떠돌던 한 네티즌의 한탄이 공감을 사던 시기에 <유퀴즈>가 예전 예능의 역할을 떠맡았다.

과도한 PPL과 홍보방송의 범람으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던 대중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유퀴즈>에 마음을 주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유퀴즈>를 통해 시청자들의 고립감을 다독여주며 위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11일 방송된 tvN &lt;유퀴즈 온더 블럭&gt;
2020년 '전사들' 특집으로 꾸민 tvN '유퀴즈 온더 블럭' 

그러한 점에서 <유퀴즈>는 ‘정서적 공론장’(emotional public sphere)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공론장이라는 개념이 ‘사회구성원간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서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을 의미한다고 할 때, <유퀴즈>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섬세하고 정중하게 담아냄으로써’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일종의 정서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필자는 올해 초 <유퀴즈>를 처음 기획한 김민석 PD와 심층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김 PD는 <유퀴즈>의 핵심 콘셉트로 ‘정중하고 섬세하게 말 걸기’를 제시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거는 정말 좋은 감각을 갖고 있는 프로다라는 걸 느꼈어요. 언뜻언뜻 드러나는 자막을 통해서 어떻게 저렇게 넘치지 않고 또 부족하지 않게 절묘한 지점들을 글로 풀어내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유재석씨가 거리에서 굉장히 정중하고 반갑게 누군가한테 말을 건단 말이에요. 헤어질 때도 저희가 퀴즈를 풀어서 맞히면 상금을 드리고 틀리시면 어떤 상품을 드리고 또 애틋하게 헤어지는데 그런 정중하면서도 섬세한 말 걸기와 그런 장면이 프로그램에 큰 아이덴티티하고도 같이 해야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김 PD와의 인터뷰하면서 놀랐던 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연출자의 입에서 ‘정중하고 섬세한 말걸기’라는 핵심 컨셉트가 흘러나온 것. 또 한 가지는 인물 섭외에서 PPL이나 홍보 목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차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PPL일수도 있겠다 싶은 책을 쓴 시인이나 불닭소스 개발자, 백화점 디자이너 등은 PPL이 아니라며 <유퀴즈>에 '인물 PPL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선 제안(출연 제안)도 되게 많이 들어오고 그런데 제안 중에 저희도 이렇게 한번쯤 관심 갈 만한 리스트와 뭔가 겹치거나 하면 저희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해보긴 하는데. 저희 원칙 중 하나는 이렇게 PPL이나 홍보 목적으로 제안이 들어오는 것들은, 저희가 하고 싶은 사람이더라도 차단을 합니다. 그런 루트로 들어오게 되면 저희가 하고 싶어도 안 하는 쪽입니다. (중략) 저희가 모든 인물 섭외에 관한 PPL은 전혀 없습니다. 받지 않고요. 그리고 저희가 PPL을 안 한 지 지금 거의 1년이 다 되어갑니다.” (2022년 1월 14일 김민석 PD 인터뷰 중)

인터뷰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유퀴즈>는 '360도 마케팅'(전후상하 전방향 마케팅)으로 대표되는 상업성을 중시하는 tvN에서 PPL 압력을 이겨내며 광고와 콘텐츠 판매 그리고 채널 이미지 향상이라는 성과를 내왔다. 공영방송사도 해내지 못한 정서적 공론장의 성취에 시청자들도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CJ ENM은 당선자를 성급하고 거칠게 출연시킴으로써 콘텐츠에 축적된 대중의 믿음을 정치권과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더군다나 <유퀴즈>는 CJ ENM이 2021년 발간한 ESG보고서에서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다양한 면면을 담아내며, 이야기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발산한다”며 Governance의 사례로 손꼽은 콘텐츠다.  

오는 27일 방송 예정인 유퀴즈 '너의 일기장' 예고편 영상 갈무리.
오는 27일 방송 예정인 유퀴즈 '너의 일기장' 특집 예고편 영상 갈무리.

이른바 ‘유퀴즈 사태’를 리(理)와 기(氣)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저자 오구라 기조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철학은 리와 기의 철학이며, 그중 핵심이 리라고 보았다. 리란 진리, 원리, 윤리, 논리, 심리 등의 총칭으로 보편적인 규범이자 도덕성이고, 기는 물질성으로 우주에 충만하여 운동하는 유기체적 생명력이자 물질의 기초다.

조선시대는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저절로 굴러온다고 믿었기에 무력투쟁이 아니라 이론으로 투쟁했으며, 모든 사람 각자가 체현하는 ‘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일원적으로 서열이 정해진 것이 한국 사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리’를 축으로 한 인간관계는 수직적 구조이며, ‘기’의 세계는 정, 용서, 치유, 혼돈 등으로 엄격성보다는 긍정성이 강조된다고 또 다른 차원에서 주장한다. 

정치라는 영역은 엄격하고 굳건한 질서의식이 존재하는 ‘리’의 세계라 할 수 있으며, 호방하고 느슨한 예능은 ‘기’의 영역에 속한다. 당선자와 유재석 조세호 사이의 버성김은 특성이 너무 다른 두 영역의 특성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두 영역 사이에 새로운 ‘리(利)’가 ‘무례하고 거친 방식으로’ 끼어들었음이 방송에서 도드라졌다. 시청자들이 방송을 폭력적으로 느낀 것도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 사회에 윤리나 도덕을 지칭하는 ‘리’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사회가 도래하려 하고 있으며, ‘리’를 돈으로 사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리(利)’가 아닐까? 

종합하면 ‘유퀴즈 사태’는 ‘기’라 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권력의 힘으로 출연할 수 있다는 수직적 ‘리’의  사고방식, 그리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사의 프로그램을 권력과 맞바꿀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적 ‘리(利)’의 사고의 상호작용으로 볼 수 있겠다. ‘리’의 세계와 ‘기’의 세계는 뒤섞여있지도 않고, 서로 떨어져 있지도 않다(不相雜, 不相離). 표면상 ‘리’인 세계에도 100% ‘기’가 있으며, ‘기’로 보이는 것 중에도 100% ‘리’가 있다. ‘기’의 맑고 탁함에 따라 ‘리’가 드러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번 ‘리’가 계속 ‘리’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한국 사회가 그토록 파란만장하게 변혁을 거듭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리’가 중요하며, 예능과 콘텐츠 산업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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