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우리가 몰랐던 다이애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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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우리가 몰랐던 다이애나비
유명인 가십을 넘어 모두의 삶으로 나아간 영화 '스펜서'
  • 홍수정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29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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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펜서' 스틸컷.
영화 '스펜서' 스틸컷.

*이 글에는 <스펜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영화 <스펜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여성의 삶을 다룬다. 영국 왕실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스펜서. 흔히 말하는 다이애나비(妃)이다. 영화가 이런 선택을 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관객들은 이미 아는 이야기에 지겨워하고, 자칫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다 누군가의 삶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스펜서>는 현명하게도 신선한 접근을 한다. 다이애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대신, 그녀가 왕실에서 경험하는 단 며칠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현미경을 갖다 대며 그녀가 느꼈을 감정을 체험하게 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우리는 사실관계나 정치적 판단에서 거리를 둔 채로, 한 인간으로서 다이애나가 겪은 일상에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영화의 시작은 인상적이다. 도로 위에 한 마리의 꿩이 죽어있고, 그 옆을 여러 대의 차들이 지나간다. 꿩의 사체는 금방이라도 차에 치일 듯 아슬아슬하다. 언제 차바퀴에 짓눌릴지 모르는 동물의 사체라니. 영화는 어째서 이토록 위태롭게 시작되는 것일까. 이것은 다이애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비유일까?

다음 장면에서는 직접 차를 몰고 운전하는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보인다. 그녀는 길을 잃은 것 같다. 길을 묻기 위해 상점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수군댄다. "어머, 다이애나야." 한편 왕실에서는 굳은 얼굴의 관리인들이 그녀를 두고 뒷말을 한다. "늦었군. 지각이네." 그러나 다이애나는 서둘러 왕실로 복귀하는 대신 길가의 허수아비를 쳐다본다.

자, 여기까지. 이 영화의 오프닝은 다이애나와 그녀를 둘러싼 왕실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엄격하고 경직된 왕실. 거기 속하지 못한 채로 겉도는 자유로운 성격의 다이애나. 이들의 동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이애나가 보는 왕실은 규율에 사로잡힌 곳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마치 시곗바늘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정확하게 째깍거리듯, 시시각각 예정된 세밀한 계획과 규칙대로 움직인다. 식사 시간에는 정해진 의상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야 한다. 아이들은 밤마다 춥다고 아우성이지만 난방은 켜지 않는다. 그것이 전통이니까. 여기에는 현재와 미래는 없고 오로지 과거뿐이라고 다이애나는 말한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다이애나가 왕실에 머무는 단 며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숨 막히는 시간을 견뎌왔는지를 체감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그녀가 내뱉은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조차 소문이 되어 온 왕실을 떠돈다. 그녀에게는 한 줌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무수한 손길이 그녀를 옥죄어 온다. 숨 막히는 공기에 그녀는 자주 울먹이고 구토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 다이애나가 겪는 통증을 피부로 체감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유독 해방감을 선사하는 장면은 다이애나가 왕실의 커튼을 뜯어내는 장면이다. 왕실의 사람들은 파파라치가 본다는 이유로 옷을 갈아입을 때 반드시 커튼을 친다. 다이애나가 한 번 커튼을 치지 않고 옷을 갈아입자 찰스 왕세자(잭 파딩)는 그녀의 부주의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관리인들은 그녀의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방 커튼을 모두 기워놓는다.

촘촘히 박음질 된 커튼의 이음새를 과감하게 뜯어버린 순간, 얼굴에 햇빛이 쏟아지고 그녀는 가까스로 숨을 쉰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녀는 가위에 찔려 피를 보고 만다. 이런 연출은 상징적이다. 다이애나가 속한 이곳, 영국 왕실은 커튼의 박음질을 뜯는 정도의 작은 일탈로도 피를 보아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불안하고도 고독한 시간들 속에서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을 본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이며, 왕비가 된 지 겨우 천 일 만에 간통의 누명을 쓰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앤 불린. 남자의 의지에 따라 왕궁에 속했다가, 탑에 갇혔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그녀를 다이애나는 자신과 동일시한다. 앤 불린의 환영은 점점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해진다. 환상과 상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이쯤 되니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워진다. 다이애나는 괜찮은 것인가. 그녀의 판단력을 믿을 수 있을까. 극심한 스트레스로 평정심을 잃은 탓에 생각과 감각마저 의심받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다이애나에게 주어진 가장 잔인한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스펜서' 스틸컷.
영화 '스펜서' 스틸컷.

이 여자의 삶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색다른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어느 날 찰스 왕세자는 아이들을 사냥터로 데려가 (아이들이 평소에 싫다고 했던) 꿩 사냥을 가르치려 한다. 그 순간 다이애나는 사냥터에 용감하게 뛰어들어와 아이들을 왕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끝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짐승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그 문화에 자신의 아이들이 젖어드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왕실 밖으로 빠져나온 다이애나는, 이름을 묻는 가게 점원의 말에 ‘스펜서’라 대답한다. ‘스펜서’는 다이애나가 속한 가문의 이름이자, 그녀가 유일하게 집(home)이라고 느끼는 세계이다. 그 이름을 당당하게 내뱉음으로써 다이애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자기만의 가정을 완성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스펜서’가 이 영화의 제목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다이애나를 영국 왕실의 전통을 이어받은 며느리가 아니라, 자신만의 핏줄을 계승한 강인한 여성으로 기억할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그토록 강렬하게 염원했던 자신만의 ‘집’에 도착한다.  

<스펜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다이애나’가 아닌 ‘스펜서’로서 한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무지했던 한 인물의 사소하고도 거대한 일상을 스크린 위에 되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거기에는 차가운 규율 앞에서 절망하고, 따듯한 가정과 애틋한 사랑이 그리워 눈물짓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러니 어쩌면 이것은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펜서>는 짧은 삶을 마감한 어느 유명인에 대한 가십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삶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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