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문재인 대통령이 결국 임기 말 특별사면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언론은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은 물론, 김경수 전 지사와 정경심 전 교수가 함께 거론되는 상황에도 여론이 좋지 않아 부담이었을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당연한 해석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시간을 되돌려 보면 이는 언론의 독백에 가깝다. 유력한 사면 대상자가 누구인지, 그게 왜 정치적 부담이 되는지 그 해석까지 널리 유포한 것은 사면권자인 대통령이 아니라 언론이기 때문이다.
최근 특별사면 관련 보도들은 대부분 “사면 고려 대상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지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올라 있다”고 전했다. 소스는 하나 같이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다. 이것만으로도 언론이 불명확한 출처로 특정 인물들을 ‘사면 대상자’로 만든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임기 말 으레 있었던 일이고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했음에도 청와대가 별 말 하지 않았으니 넘어가자. 근본적 문제는 3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선 직후 윤석열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할 것이라 이미 밝힌 상태였는데, 3월 15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나온 권성동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전 (이명박)사면을 결단해야 한다. 김경수 전 지사를 살리기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동시 사면을 남겨 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핵관’이 ‘김경수-이명박 동시 사면’을 공개 거론한 것이다.
이때부터 언론은 권 의원 발언을 받아쓰며 ‘정치적 거래’ ‘김경수 끼워넣기’ 등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3월 15일부터 16일까지 단 이틀만에 ‘이명박 사면’을 언급한 보도만 512건, 이 중 권성동 의원의 발언을 인용한 보도가 120건(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에 달했다. 사설도 27건이나 되는데 대부분은 <문 대통령, 통합 바란다면 MB사면해야>(중앙일보 3.16), <이명박 사면에 김경수 끼워넣기는 법치 농단 발상>(문화일보 3.16) 등이다.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윤핵관’ 발로 나온 ‘김경수-이명박 동시사면’에 대고 ‘둘 중 이명박만 괜찮다’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짚어주는 보도, ‘이명박 사면’ 자체를 비판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양상은 최근에도 그대로 반복됐다. 여전히 사설 중엔 <이명박 사면 필요하나 ‘측근 끼워넣기'는 안 된다>(세계일보 4.29)와 같은 제목이 두드러진다. ‘MB 사면’의 이유로는 ‘국민 통합’을 지목하는데 왜 ‘MB사면=통합’이 성립되는지, 통합이 정말 된다면 새 대통령이 하는 게 차기 정부에도 좋은 일 아닌지, 이런 궁금증은 언론 보도에서 찾아볼 수 없다.
3월과 다른 점도 있다. 언론은 ‘정경심 전 교수’도 포함해 ‘끼워넣기’라 비판했으며 이재용 부회장 사면에 조금 더 정성을 쏟았다. 이미 문 대통령이 사면 의사를 접었다는 보도가 나온 5월 3일에도 <막판까지 실낱같은 희망 거는 재계>(머니투데이 5.3)와 같은 보도가 나왔고 ‘반도체 경쟁력 제고’ ‘경영 복귀 필요성’이 가석방이 된 이 부회장에게 ‘사면’까지 해줘야 하는 이유로 꼽혔다.
같은 날 <서울경제>는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도 않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 반도체 공장 방문 일정’을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안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걸 ‘단독’ 보도했다. 여기다 ‘문 대통령은 특별사면에 부정적’이라며 ‘사면’을 함께 거론한 게 키포인트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면 안 해줘?’라고 읽는다면 너무 과한 독해일까.
특별사면 대상자에 대한 여론을 보여주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긴 하다. 그러나 그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윤핵관’발로 확정하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 ‘누구는 제발 좀 해줘라’라는 식의 보도를 양산하는 건 여론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런 보도를 하려면 최소한 누군가를 콕 집어 그 사람만 죄를 씻어주는 ‘특별사면’이 왜 가능한지, 왜 필요한지 설명을 해줘야 한다.
문제는 그런 보도도 없다는 점이다.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특별사면을 언급한 보도 148건 중 ‘일반사면’과의 차이점을 짧게라도 쓴 기사는 겨우 4건이다. 언론이 사면 보도를 양산하는 목표가 ‘특별사면’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도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언론이 말하는 ‘특별사면’은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