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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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
[라디오 큐시트]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2.05.23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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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진 회장.
주우진 자립준비청년협회 회장.

[PD저널=박재철 CBS PD] 성장기, 전혀 다른 차원의 독서 체험을 제공한 첫 번째 책은 데미안이었다.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위해선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구절이 당시 꽤 울림이 컸다. 대학 때 접한 김수영의 시구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의 순화 버전쯤 될까. 해체 없이는 재구성도 없다는 점에서 사실 둘의 의미는 비슷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성장통을 동반한 탄생론도 바뀌기 시작했다. 오롯이 개인의 어깨에 얹어진 짐을 이젠 타인이나 사회가 조금씩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리 잡았다. ‘알 깨기’는 안팎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외부 조력의 필요성 때문에 여기저기서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들려왔다. 경쟁 사회와 능력주의가 브레이크 없이 꼭짓점에 가닿을 정도라 수긍하는 이가 많았다. 

인터뷰이인 주우진 씨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머릿속에 떠오는 단어도 줄탁동시였다. 올해 29살. 최근 ‘자립준비청년협회’를 만들었다. 이곳은 아동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 퇴소한 사람들의 자립을 돕는 단체다. 만 18세가 되면 무조건 퇴소해야 했던 규정이 얼마 전 완화돼서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24세까지 시설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 평균적으로 한해 3000여 명이 정착금 500만 원을 받고 시설에서 퇴소한다. 

퇴소자들의 막막함을 덜어내려 알음알음 조언을 해주다 보니 입소문이 났고, 몇 달 동안 100명이 넘는 이에게 연락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협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 대표 본인도 14살 때부터 대전에 있는 한 보육원에서 생활했다. 시설 퇴소자 남성 중에서 4년제 대학을 간 최초 사례라 하니 그간의 여러 우여곡절이 짐작됐다. 대학 입학 한 해 전인 2012년도에 한국장학재단이 생겨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가능했단다.

보건복지부가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지원강화 방안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보건복지부가 2021년 7월 13일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지원강화 방안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주 대표에게 자립은 언제 완성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선은 ‘경제적 자립’을 꼽았다. 기초 생활 수급에서 벗어나는 단계가 그 기준이라 했다. 다음으로는 ‘정서적 자립’으로 타인에 대한 심적인 의존도를 낮추는 것. 퇴소하고 나서 주위 누군가가 조금만 잘 해주면 쉽게 믿는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돈도 빌려주고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그만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자립’을 꼽았다. 사회적 자립이라면 취업? 주 대표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저희가 왜 패배감, 무력감 그리고 깊은 열등감 이런 걸 가지고 퇴소하는가? 곰곰이 돌이켜보니까 결국은 부모와의 관계 단절, 가정 파괴라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면, 또 온전한 가정을 꾸리게 되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물이 파인 홈을 찾아 채우듯, 마음은 결핍을 먼저 메우려 하는 걸까? 사회적 자립에 대한 주 대표의 가치 판단은 잠시 괄호 안에 넣기로 했다. 고유한 삶의 맥락에서 나온 생각이니 그대로 수용하고 싶었다.

주 대표는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괜찮을까요?”라며 옆 사람의 승인 내지 묵인을 이끌어 내는 말을 자주 했다. 방송 후에 지나가듯 얘기하니, 눈치를 많이 보는 습관 때문이란다.

“눈치가 없어 선생님이나 형들에게 자주 맞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나 봐요. 인식을 못 했는데 사회에 나왔을 때도 그 영향이 꽤 있더라구요.”

눈치를 본다는 것은 상황을 살피고 타인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주 대표가 말하는 눈치는 폭력이나 부당함을 피하고픈 자기 방어에 가깝다. 부당한 폭력이 그만큼 빈번했던 환경 아래에서 나온 보호 본능이고 그 본능이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있다는 고백이라 안타까움이 더했다. 

프로그램 말미에서 주 대표는 본인이 품고 있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희가 미디어에 빈곤함을 노출해서 후원금을 받는 곳이라 여기는 분들이 계세요. 저희에게는 후원금이 아니라 사실 롤모델이 절실합니다. 퇴소자분들 중에 실제로 의사나 변호사도 계세요, 정말 극소수지만. 그런데 그분들은 절대 오픈을 안 하세요. 자립 못 해 자살했다는 뉴스 대신 이런 분들이 알려진다면 저희에겐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빈곤 때문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주우진 씨를 만나면서 “사회적 부조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 ‘부조’란 일방적인 호혜와 연민하고는 분명 다를 것이다. 오히려 부조의 의미는 은행의 대출 개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급할 때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쓰고 형편이 나아지면 갚으면 그만인 것. 누구에게나 홀로서기까지는 조력이 필요하다. 도움 없는 자립은 불가능하다. 공동체로부터 떳떳하게 빌리고 당당하게 갚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일각의 편견이나 선입견은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홀로서기 이후의 삶일 것이다. 자립준비청년협회 회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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