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금지한 분쟁 취재...여권법 개정해야"
상태바
"국가가 금지한 분쟁 취재...여권법 개정해야"
서울 청운동 ‘류가헌 갤러리’서 열린 ‘금지된 현장’ 사진 사진전 현장
“여권법 가장 중요한 시점에 현장 취재 막아”
  • 엄재희 기자
  • 승인 2022.06.03 1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취재한 장진영 작가의 사진을 관람 중인 관람객 ⓒPD저널 

[PD저널=엄재희 기자] “전쟁은 사회적 이슈인데 법적 제한 때문에 한국인의 시각으로 역사를 목격할 수도 없고, 우리의 주체적인 해석조차도 불가능합니다. 외국에서 보내주는 뉴스를 받아서 전달해주는 상황인데, 프리랜서 사진가들이 사명감과 의식을 가지고 현장에 가서 진실을 목격하고 알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3일 서울 청운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만난 석재현 온빛다큐멘터리 회장은 세계 분쟁지역 사진전 ‘금지된 현장’을 개최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금지된 현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콩고, 코소보, 아프간, 이라크 등 세계 각 분쟁지역을 기록한 사진 100여점이 전시돼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분쟁지역 취재 제한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진작가들 12명과 분쟁지역 촬영 경험이 있는 강경란·김영미PD 2명이 전시회에 참여했다.

러시아의 침공 개시 이후 우크라이나에는 각국의 취재진이 몰려들었지만, 우리나라 취재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07년 샘물교회 피랍사건 이후 여행금지 국가 입국은 예외적으로 허가를 받도록 여권법이 바뀌면서 국내 언론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외신 보도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다. KBS·SBS 등 일부 취재진이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에 들어갔지만, 취재 지역 등 제한이 심해 ‘취재통제’라는 비판이 나왔다. 허가를 받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사진작가와 독립PD는 여권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전시회에선 우크라이나 취재를 갔다가 여권법 위반 혐의를 받은 장진영 사진작가가 우크라이나에서 찍은 사진 ‘우크라이나 키이우 기차역’ 등도 만나볼 수 있다. 키이우역에서 기차에 탑승한 아이와 아내를 유리창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 군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2019년 쓰리랑카 내전 종식 이후 모습을 찍은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프리랜서 작가의 사진 옆에는 "월경 없는 분쟁지역 취재란 가능하지 않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3일 열린 '여권법 개선을 위한 성명 발표 및 토론회' ⓒPD저널

전시회장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전시를 보러온 관람객들은 여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취미 사진가라고 소개한 이영주 씨는 “분쟁지역에 들어가 취재를 해야하는 데 여권법이 있어서 못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사진가들이 목숨을 걸고 취재하는데, 국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법으로 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낙후한 법을 왜 고집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을 하는 박찬호 씨는 “외국 기자들이 폭탄이 떨어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촬영하고 취재하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접할 수 있는데, 한국 기자들의 영상은 볼 수 없었다”며 “역사적 현장 기록에 대해서는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작가는 이날 열린 토론회에서 “2007년 여행금지제도 이후 선배들의 분쟁 지역 취재 역량이 단절된 거 같고, 그렇기 때문에 물어볼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며 “15년 동안의 단절으로 한국의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능력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많이 느꼈다”고 했다.

전시회를 주최한 류가헌 사진작가와 온빛다큐멘터리는 3일 성명서에서 “현행 규정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요 취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 가장 중요한 시점에 현장에 있어야 할 기자가 현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모든 상황이 끝나버리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허가제 같은 통제보다는 정보의 정보력, 외교, 행정적 지원을 통한 자국 언론인 보호를 통해, 여행금지 국가에 대한 언론 취재 및 보도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전시회는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