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보도', 그때는 '표적수사'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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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때 '북풍'까지 동원한 조선일보 수사 독려 보도
정권 교체 때마다 논란 반복되지만, '제도 개선'엔 관심 없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언론과 검찰이 올해만 두 번째로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시즌을 열어 젖혔다. <조선일보>가 단연 발군이다. 3월 대선 직후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고발 3년 만에 착수했는데 <조선일보>는 보도 핵심 내용 대부분을 “검찰 관계자”, “검찰 압수수색”, “본지 취재”와 같은 출처에 의존한 <[단독]“前 동부지검장들, 산업부 블랙리스트 무혐의 압박” 내부 증언>(3월 28일), <산업부 국장, 2017년 발전4社 사장들에 “정부 방침이니 나가라”>(3월 29일) 등의 보도를 쏟아내며 수사를 독려했다.

검찰이 청구한 백운규 전 산업부장관 영장이 기각된 15일, 이번에도 <조선일보>는 <백운규, 한명숙 측근 황창화에 면접지 유출 정황… 公社 사장됐다> 제하의 단독 보도를 통해 ‘문재인 청와대 윗선 수사’ 첫 대상을 인사비서관실 출신 박상혁 민주당 의원으로 지목했다. 총 8개 문단 중 7개 문단이 ‘검찰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라는 말이 나온다’로 이뤄진 전형적 ‘검찰발 보도’다.

검찰과 언론이 함께 판을 깔며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불법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는 명제를 거스르긴 어렵다. 다만 정권에 따라 목표를 달리한 언론의 ‘블랙리스트 칼춤’은 여론을 혼란에 빠뜨리고 갈라치기 한다는 점에서 톺아볼 필요가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문제가 가장 심각하면서도 그 솔직함이 돋보이는 첫 번째 모순점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 아직 재임 중인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을 향한 ‘사퇴 종용’ 보도들이다. 이것도 <조선일보>가 판을 짜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한상혁·전현희·홍장표…文정부 기관장 69%, 임기 1년 넘게 남았다>라는 보도를 시작으로 ‘임기 1년 이상 남은 문재인 정부 알박기 인사들, 현 정부와 국정철학이 다르니 물러나는 게 상식’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웠다.

<[사설] 국정철학 다른 방통·권익위원장…제도 전반 재검토해야>(서울경제), <[사설] 文 임명 국책 기관장이 尹 정부 ‘두뇌’라는 모순>(서울신문) 등 타 매체도 프레임에 가세했고 15일엔 <조선일보>가 재차 한상혁 위원장 선친 때부터 있었다는 농지의 5~6평짜리 건물을 ‘별장급 농막’이라며 ‘농지법 위반’ 의혹을 들고 나왔다.

검찰과 사법부가 ‘사퇴 종용’을 불법으로 확정했으니 국민의힘이 직접 사퇴하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 언론이 먼저 ‘사퇴’를 ‘압박’하고, ‘불법’이라는 카드까지 미리 쥐어주는 그림이다. 언론이면 장관급 인사를 비판할 수도, 사퇴를 요구할 수도 있으나 그 이유가 ‘이전 정부 사람이라서’라면 곤란하다. 그게 바로 언론이 적극 파헤치고 비판해왔던 ‘블랙리스트’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조금 식상하지만 분명하기도 한 두 번째 모순점은 정권마다 언론의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목록’을 작성해 정부 지원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동됐고 2017년 6~7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정원 등 기관에서 문건이 공개되며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당시 보수언론은 이를 ‘정치개입, 표적수사’로 규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국정원이 비밀TF를 가동해 연예인들을 퇴출시키는 직접적 방식을 동원했는데 2017년 9월 국정원의 적폐청산TF 조사 결과로 그 근거들이 드러났을 때, <조선일보>는 사설 <결국 '이명박' 표적 적폐 청산, 軍엔 "北 더 신뢰" 인물까지>(2017.9.15.)에서 ‘표적청산’이라 이름 짓고는 ‘북풍’까지 동원했다. 반면 현재 검찰의 행보에 ‘표적수사’ 낙인을 찍은 사설은 단 1건도 없다.  

마지막으로 예나 지금이나 보도가 거의 없어서 안타까운 지점이 있다. ‘제도 개선’ 부분이다. ‘블랙리스트’ 논란은 근본적으로 대통령 임기와 기관장 임기가 어긋난다는 현실에 기인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다수당이 민주당인 지금이야말로 임기를 일치시키는 등의 제도 개선 합의를 이끌어낼 적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블랙리스트’ 논란마다 ‘제도 개선’을 언급하는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이 진심으로 ‘블랙리스트’를 걱정한다면 검찰발로 ‘누가 범인이라더라’ 수선을 떨거나, 특정 정당을 대신해 ‘너는 우리 사람이 아니니 물러나라’ 역성을 들어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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