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의 만인보 '전국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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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의 만인보 '전국노래자랑'
[라디오 큐시트]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2.06.20 14: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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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전국노래자랑> ⓒ화면캡처
KBS <전국노래자랑> ⓒ화면캡처

[PD저널=박재철 CBS PD] <전국노래자랑>은 매주 일요일 12시에 펼치는 ‘만인보’였다. 인간군상의 희노애락이 흥겨운 노랫가락에, 저마다의 곡진한 사연 속에 갈피갈피 가득했다.

브라질에 가 있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세 살배기부터 “귀만 조금 어두울 뿐 목소리는 아주 카랑카랑 하셨다”던 115세의 촌로까지 실로폰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이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층에 꿈의 무대를 제공했다. 후에 ‘가인 신드롬’을 일으킬 무명의 트로트 가수도 이곳을 거쳐 갔다 하니 등용문으로서도 꿈의 무대라는 칭호는 클리셰는 아닌 듯싶다. 
 
<전국노래자랑>은 트럭에 무대 세트와 악기 단원들을 싣고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유랑이어서일까 떠돎과 비애가 스며있다. 엘리지의 정서라고 해야 하나. 거친 입자의 브라운관 화질, 출연자들의 원색적인 의상, 날것 그대로의 유흥 등으로 이 유랑의 전경은 보는 이에게 묘한 슬픔을 전한다. 슬픔? 그 분위기 안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프로그램에 대한 ‘내재적 이해’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 슬픔의 자장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송해 선생님이 왜 나왔냐? 물어보니 울먹이면서 ‘자기가 위암 말기인데 평생소원이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 거였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송 선생이 쾌차하시라고 말씀하시곤 그럼 무슨 노래를 부르시겠습니까? 물으니, 곧장 창부타령을 부르더군요. 창부타령은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닐니리아 니나노’하는 타령이에요. 그걸 듣는데 저는 그 자체가 굉장히 슬펐어요. 그 풍경이.”

오민석 단국대 영문과 교수는 당시 65세의 김춘자 씨 출연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딴따라다> 송해 평전을 쓴 오 교수는 <전국노래자랑>을 떠올리면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사실 <전국노래자랑>은 <햄릿>의 햄릿이나 <허준>의 허준처럼 ‘송해’라는 타이틀 롤로 칭해도 무방하다. 43년을 맞은 장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34년간 프로그램을 지킨 이가 바로 송해다. 

34년이라는 물리적 시간만으로 그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는 미진함이 크다. 한때 그를 하차시킨 방송사의 결정이 시청자의 항의로 번복되기도 했다. 1년 넘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며 글을 썼던 오민석 교수에게 송해라는 인물에게 현미경을 갖다 댄 동기를 물었다.
    
“그분이 겸손하신 게, 제가 늘 곁에 쫓아다녔는데 ‘이 사람이 단국대 교수인데 내 평전을 쓰려고 그래’, 이 말을 한 번도 안 하셨어요. 대신 저를 뭐라 소개하시냐면, ‘이 양반이 우리 세계에 관심이 많아. 지금 공부하러 이렇게 맨날 날 쫓아다녀’. 제3자가 연예인을 대상으로 평전 쓴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자랑할 만한데 책이 나올 때까지 그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하시더라구요.”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한 대학교수의 마음을 연 노령 희극인의 저력은 몸에 밴 ‘겸손함’이었다고 회고한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웅숭깊은 인간성에 반해서 평전까지 썼다는 고백이다. 

그러면서 책의 한 대목을 읽어준다.
 
“낙원동 골목길을 걷는다. 누추한 행색의 노인들, 짐꾼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선생께 아는 체를 한다. 반갑게 인사를 받으며 선생은 말한다. 이 사람들이 다 내 친구들이야.”
 
故 신영복은 ‘관계의 최고의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했다. 입장을 동일하게 만드는 일을 생활화한 이에게는 기존의 위계와 권위와의 싸움이 일상이기도 하다.  

“그분 좌우명이 ‘공평하게 대등하게’였어요.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 녹화를 하는데, 여기 군수님 앉아야 되고 여기는 구 의원 앉아야 되고… 하면서 좌석을 미리 선점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냅다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당신들이 제일 앞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관객들이 국민들이 다 긴장한다. 앉고 싶으면 저 뒤에 아무 데나 퍼져 앉아라. 특석이란 건 없다! 저는 그 위계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게 아주 좋았어요.”

그런 송해 선생이 올해 95세로 영면했다. 곳곳에서 그의 부음에 슬퍼했다. 국민 MC라는 칭호가 인플레이션으로 그 값이 헐해졌지만 송해에게 붙이는 호칭만은 유독 맞춤하다는 느낌이다.

그의 놀이터이자 그의 왕국 <전국노래자랑>에는 남녀노소, 장삼이사들의 뜨거운 파토스가 낭만으로 가득했다. 낭만(浪漫)의 본래 의미가 ‘흘러 넘쳐 퍼진다’는 뜻일진대 이 프로그램만큼 낭만적인 프로그램도 흔치 않다. 더구나 여기에 드리운 ‘송해’라는 그늘은 길고도 깊다. 이제 그 그늘이 역사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한 인물을 신화 속에 가두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봉인되고 복제했을 때 진짜 죽음이 찾아온다. 

그의 인간성과 그의 일갈이 풍문처럼 계속되길 바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의 이어달리기를 하길 바란다. 어쩌면 그것이 누군가를 추모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아닐까.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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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1 03:26:32
그만해 관심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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