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 비극의 역사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3] 세계 이목 집중된 美 총기규제법안 논의

5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시위대가 상원 민주당원과 합류해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 난사와 관련해 총기 규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5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시위대가 상원 민주당원과 합류해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 난사와 관련해 총기 규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역사상 오랫동안 전쟁은 전사계급의 몫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기술인 검술, 창술, 궁술, 기병술 등을 숙련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는 평민들이 이러한 무술을 탁월하게 익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화약 무기가 등장하면서 전사계급의 지위가 무너진다. 십수년간 검술을 갈고 닦은 일류 무사가 갓 징병되어 한나절 훈련을 받은 농부의 총에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기사 계급이 사라졌다. 일본에서도 사무라이들이 그렇게 몰락했다.

전사계급이 힘을 잃으면서 거대한 권력을 지닌 국가가 등장한다. 칼이나 창은 대장간에서 만들 수 있었지만 대포나 총과 같은 화약무기를 제조하는 기술은 개인이 보유하기 어렵다. 화약이나 총탄을 구비하는 것도 개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화약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자원을 국가가 독점하면서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과 같은 강력한 국가가 등장한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쓴 것이 17세기 중반이다. 화약무기가 칼과 창 같은 냉병기를 압도하는 시점에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홉스의 세계에서 자연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진다. 그 세계에서는 모두가 늑대이며, 서로를 잡아먹으려 끊임없는 싸움을 벌인다. 누구도 그 세계를 즐길 수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늑대 무리를 한방에 제압할 수 있는 괴물 ‘리바이어던’에게 주권을 맡기고 그 대가로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그 괴물이 곧 강력한 왕권을 지닌 국가이다.

근대국가에 대한 원초적인 이 개념에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책무가 드러난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일이다. 강력한 힘으로 늑대들의 이빨을 뽑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끝장내고 국가의 통치 아래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근대국가는 개인이 가지고 있던 칼과 창의 무력을 국가가 통제하는 총의 무력으로 대체하면서 시작되는 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월 2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월 2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미국인들은 좀 특이한 환경을 경험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줄 리바이어던이 없었다. 야생동물로부터, 원주민들로부터, 또 다른 이주민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초기 미국인들에게는 위태로운 환경으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총이었다. 그리고 그 총을 들고 대영제국과 싸워 자유와 독립을 쟁취했다. 그렇게 미국이라는 신흥 강대국이 세워졌다. 미국인들에게 총이 생명과 자유의 보루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배경이다.

문제는 국가가 세워진 다음에도 미국인들이 여전히 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자연상태의 폭력을 규율하는 것이 근대국가의 기본 개념이다. 그러니 미국 정부는 개인이 소지한 총을 압수하고 화약무기를 국가가 독점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좀 다른 선택을 했다. 개인의 총기 소지를 인정해주는 대신 매우 강력하게 무장한 경찰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양방향에서 끊임없이 사고가 터진다. 한쪽에서는 민간인이 총기를 난사해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심지어 어린 학생이 총을 들고 학교에 등교해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죄 없는 시민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특히나 경찰 오인 총격의 피해자가 흑인인 경우가 잦아지면서 전사회적인 인종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선진국들 가운데 미국처럼 일반인들 사이에 총기가 널리 확산된 나라는 없다. 평시에 일반인들이 총기로 무장을 하는 것은 대체로 국가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그 충격이 사라지기도 전에 앨라바마의 한 교회에서 또다시 총격 사건이 일어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됐다. 연이은 총격 사건에 미국 내 총기 규제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도 오랜만에 의기투합해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보다 현실적인 총기 규제가 이뤄지기까지는 여전히 산 너머 산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한다. 민주주의의 심장이자 최고 수준의 선진국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무법 사태를 미국인들 스스로가 제어할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