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장시간 촬영 만연한데...주52시간 유연화에 불안감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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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장시간 촬영 만연한데...주52시간 유연화에 불안감 고개
'미남당' 스태프 "8시간 촬영 초과한 날 많아...하루 16시간 촬영한 드라마도"
연장근로시간 월 단위로 개편 검토하겠다는 정부..."안전장치 해제하겠다는 것"
  • 엄재희 기자
  • 승인 2022.06.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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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이 28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미남당’방영 강행을 규탄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PD저널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이 28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미남당’방영 강행을 규탄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PD저널

[PD저널=엄재희 기자] 주52시간제도가 안착하기도 전에 수술대 위에 오르면서 드라마 제작 현장 안팎에서 ‘장시간 노동’ 회귀에 대한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제작사에 ‘주52시간제 준수’를 요구했다가 재계약을 못한 KBS <미남당> 스태프의 재계약 불발 사태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 여건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남당> 첫방송날인 27일, 드라마 방영 강행을 규탄하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미남당> 스태프 A 씨는 “미남당 현장뿐만 아니라 많은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16시간씩 3회차를 찍는 현장도 있다고 들었다. 이 문제가 꼭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을 연출한 이은규 전 MBC 드라마국장은 “(방송 스태프들이) 3~4시간 잘 때가 많다고 하니까 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더군다나 정권이 바뀌고 주52시간제까지 흐지부지되고 있다”며 스태프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에 따르면 <미남당> 스태프는 주 4일 동안 하루 평균 11~12시간씩 촬영을 했다. 스태프 10여 명은 근로기준법에 맞게 노동시간을 하루 10~11시간으로 단축해달라고 요구했다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미남당> 제작사는 "주 52시간을 준수하며 촬영을 진행했다"며 “일부 스태프들이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며 재계약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23일 주52시간제 개편방안을 설명하고 있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뉴시스
지난 23일 주52시간제 개편방안을 설명하고 있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뉴시스

방송스태프지부 등으로부터 <미남당> 근로감독 요청을 받은 고용노동부는 최근 ‘주52시간’을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총량 관리 방안이 도입되면 현재 주12시간인 연장근로는 월 48시간 범위 내에서 운용될 수 있다. 

주52시간제가 드라마 제작 현실에 부합하지 않은 제도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드라마 제작사 쪽은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 현장 특성상 억지로 노동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며 "장마철 전에는 미리 찍어놓고, 장마 기간에는 덜 찍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럴 수가 없다. 산업의 특성에 맞게 제도를 바꿔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장시간 꼼수 촬영이 빈번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드라마 스태프와 인권단체들은 장시간 노동이 제도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은 “지금도 4일 동안 13시간씩 근무하는 형태가 관행처럼 자리 잡았는데, 월 단위로 환산한다면 (주52시간제 도입) 이전처럼 매일 장시간 촬영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지금은 주52시간제를 지켜야 한다는 압력이 현장에 작동되고 있고 제작사 측에서도 눈치를 보는데, ‘월 단위’ 관리 도입은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노사 합의를 거쳐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방송사들은 초과근로수당, 휴게시간 등을 보장하고 있지만, 주로 제작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이런 안전장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 건강보호 조치로 11시간 연속휴식을 병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으나, 드라마 제작 현장에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현재에도 드라마 세트장으로 이동하는 출퇴근 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제작사와 스태프간에 분쟁 요인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드라마 제작 현장은 일당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임금을 덜 주기 위한 편법수단으로 '주52시간제 유연화'가 악용될 소지도 있다”며 “월 단위로 제도가 개편된다면 지금보다 더 적은 일당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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