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버릭'이 필사적으로 싸운 적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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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버릭'이 필사적으로 싸운 적의 실체
영화 '탑건: 매버릭', "Not today"에 담긴 파일럿의 운명
  • 홍수정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7.01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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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매버릭' 스틸컷.
영화 '탑건:매버릭' 스틸컷.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탑건: 매버릭>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찬찬히 생각해보자. 이 영화에서 대원들은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누구와? 그들이 부수려는 적은 누구인가? '우라늄 원자로를 소유한 적국'이라는 말은 뭔가 충분치 않다. 한참 영화를 보다보면 이 맹렬한 전투의 상대방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문득 깨닫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말하기에 <탑건: 매버릭>의 다른 설정들은 충분히 꼼꼼하다. 특정 국가의 이름을 차용하기 곤란해 내린 결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가상의 국가를 설정해도 됐을 테니까. 이 영화는 다분히도 고의적으로 적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생각하는 진정한 적, 우리의 매버릭(톰 크루즈)이 싸워야 할 궁극의 상대는 특정 국가나 단체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탑건: 매버릭>이 이다지도 필사적으로 싸워 이기려는 적의 실체는 무엇이냐고. 이 물음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초반, 매버릭의 상관이 말한다. 앞으로 파일럿은 멸종할 것이라고. 먹고 자고 싸는, 한 마디로 인간의 육신을 가진 조종사들은 기계에 대체된 채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똑똑히 경고한다. 우리가 애정해 마지 않는 멋진 조종사들을 끝장낼 무시무시한 그것의 이름은 바로 '시대'라는 것을. 점차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파일럿은 어쩔 수 없이 사라질 운명이다.

매버릭이 탑건들을 교육하는 장면에서도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이 영화에서 매버릭이 유일하게 '적(enemy)'이라고 명시적으로 지칭하는 대상은 시간(time)이다. 그것이 미션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때 'time'의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을 넘어 '시대'로까지 확장된다. 이제 앞서 말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할 때다. 영화에서 매버릭과 탑건들이 상대할 진정한 적은 국가도, 인간도, 기계도 아니다. 어린 루스터(마일즈 텔러)를 청년으로 성장시킨 그것, 매버릭의 몸을 마모시키고 은퇴하게 만들 그것, 끝내 지상 위의 모든 탑건들을 소멸시킬 그것의 이름은 바로 'time'. 시대이다. 매버릭으로 대표되는 파일럿들의 가치를 의심하는 시대 앞에서, 그들은 온 몸을 내걸고 일대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과연 시대에 맞서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싸움에 응하는 매버릭이 태도는 의외다. 그는 말한다. "Not today(오늘은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사라지겠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매버릭은 애초에 이 싸움에서 이길 마음이 없다. 무시무시한 시대가 언제고 도래하고 말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처참한 패배의 날이 오늘은 아니라는 것. 단단한 육신이 있고, 든든한 동료가 있는 오늘 만큼은 파일럿의 운명도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어른의 성숙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지연시켜 보려는 아이의 천진하고도 애절한 바람이 동시에 엿보인다. 수긍과 지연을 동시에 말하는 <탑건: 매버릭>의 정서는 담담하고도 처절하다.

영화 '탑건:매버릭' 스틸컷.
영화 '탑건:매버릭' 스틸컷.

자, 그렇다면 어떻게 지연시킬 것인가. 영화는 파일럿들의 마지막을 어떻게 늦출 수 있을까. 성큼 다가오는 시대 앞에서 어떻게 탑건들의 존재 가치를 세상에 설득시킬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영화는 '액션'으로 대답한다. 다만 그 액션의 방식이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전투기들의 화려한 비행 액션을 어지롭게 선보이며 파일럿들의 가치를 입증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은 의외의 길을 간다. 위압적인 전투기나 화려한 비행 대신 파일럿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탑건: 매버릭>의 액션과 관련해 특이한 점이 있는데, 전투기의 '상승'에 유독 주목한다는 점이다. 스크린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전투기를 보여주어도 모자랄 시간에, 영화는 몇 번이고 필사적으로 위로 오르는 기체의 수직운동을 응시한다.

특히 그들이 9G 이상의 중력을 견디고 상공을 향해 올라가는 순간에 집착한다. 그 순간이야말로 임무의 성패, 나아가 탑건들의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장면에서 영화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다름 아닌 탑건들의 얼굴이다. 항공을 향해 멋지게 비상하는 전투기도, 푸른 창공도, 멋진 경치도 아닌 그저 얼굴. 이 순간 카메라는 엄청난 중력 앞에 뭉그러지는 파일럿의 처참한 얼굴을 필사적으로 클로즈업한다. 그리고 육체에 새겨지는 괴로움의 흔적들을 스크린에 남긴다.

이 때 영화의 방대한 세계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한 인간의 얼굴 이미지로 수렴된다. 그 이미지들은 <탑건: 매버릭>이 파일럿의 종말을 지연시키는 방식을 알게 한다. 그것은 한계 너머를 향하는 파일럿의 생생한 육체를 필사적으로 스크린에 새겨넣는 것이다. 

영화 '탑건:매버릭'
영화 '탑건:매버릭'

영화가 얼마나 파일럿에 집중하는지를 보여주는 두 번째 장면이 있다. 바로 도그파이트(dog fight). 전투기들이 벌이는 난투를 말한다. 이것은 우아하지 않아도 탑건들이 벌이는 전투의 본질을 드러낸다. 매버릭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이라고. 기계가 아무리 발전해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조종하는 인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부 긴 시간을 할애해서 오로지 도그파이트의 쾌감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짜릿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순간들. 팡팡 터지는 말초적인 쾌감은 그들의 존재를 실감하게 한다. 그 순간 이런 말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탑건은 여기 살아있다고. 

한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시대 앞에서, 영화는 도리어 뒤로 성큼 돌아간다. 한계에 직면해 헐떡이는 낡은 육신. 생각을 버리고 뛰어드는 개싸움. 지극히 인간적인 현장 한가운데서 영화는 파일럿들의 존재가치를 길어올린다. 이것이야말로 누구보다 멋진 몸을 간직한 톰 크루즈가 여전히 시리즈에 존립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탑건: 매버릭>은 '시대'라는 장애물을 탑건의 맨 몸으로 돌파하는 영화라 할 것이다. 이리저리 부딪치고 구르는 생생한 육체들. 그 이미지가 끝내 감동스럽다면, 그것은 뜨거운 육체의 활동이 이 시대에 남겨진 파일럿의 존재 의미를 온 몸으로 체화해 역설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고물 취급을 받는 전투기가 제 몫을 훌륭히 해내고서 엉망으로 망가진 채 활주로에 처박힐 때. 그 감동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물덩어리와 엉망진창의 카타르시스? 그건 마치 고물 취급을 받는 톰 크루즈가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탑건'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는 납득한다. 아니, 깨닫는다. 파일럿의 종말이 하루 더 지연될 수 있었던 이유를. 낡고 더럽고 처참히 망가진, 그러나 여전히 뜨겁고 강인한 육체가 말한다. Not today. 그 광경을 보며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멋진 미소의 톰 크루즈가 다시 한 번 그 말을 외쳐주기를. 하루. 또 하루. 할 수만 있다면 매일 반복해주기를 원한다. 그렇게 탑건, 매버릭은 우리 곁에 계속 숨 쉬게 될 것이다. 마지막을 영원히 지연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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