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누구의 거짓말이 더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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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누구의 거짓말이 더 나쁜가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 리플리 증후군의 변주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2.07.07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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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안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유미(수지)는 맨발로 23층까지 비상계단을 걸어 오른다. 처음에는 하이힐을 신고 올랐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23층을 오르는 건 힘든 일이다. 결국 하이힐을 벗었고 맨발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럭셔리한 최고급 아파트에서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굳이 비상계단을 걸어 오르게 된 건 그 곳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현주(정은채) 때문이다. 

과거 마레 컬렉션에서 일할 때 그는 현주의 개인 수행비서나 다름없었다. 현주는 자신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어떤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고 자신은 그들이 주는 갖은 모욕과 수모 속에서도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 말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꾹꾹 눌러 참고 또 참던 유미는 결국 폭발했고, 현주의 학위와 그의 영어 이름 ‘안나’를 훔쳐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스펙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거짓 학위는 힘을 발휘했고 그렇게 거짓에 거짓으로 자신을 새로이 쌓아올린 안나는 젊은 사업가이자 유력 정치인이 된 최지훈(김준한)마저 속이고 결혼해 과거 도저히 오를 수 없다 여겼던 현주의 삶을 자신도 살게 됐다.

유력 정치인의 아내이자 대학교수에 최고급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 하지만 그 거짓으로 쌓아 올린 삶이 진짜 안나인 현주를 만나게 됨으로써 한 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고, 그래서 유미는 그를 애써 피하기 위해 맨발로 23층까지 계단을 오르고 오르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가 보여주는 이 비상계단 시퀀스는 이 드라마가 단지 리플리 증후군의 서사만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 알랭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로 기억되는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다음백과)’를 말한다.

1999년에는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고, 우리네 드라마도 <미스 리플리(2011)>로 변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나>는 끝없이 거짓으로 쌓아올린 정체성이 무너지는 비극을 담았던 리플리 증후군 소재에 사회적인 함의를 더해 넣었다. 그건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뭐든 척척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투영이다.

안나가 된 유미가 그렇게 23층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실제로는 맨발로 23층을 계속 오르는 장면은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들이 저 높은 곳의 삶에 도달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면 밑에서 발을 동동 저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

<안나>는 자신의 삶 자체를 바꾸는 사기를 친 유미의 범죄를 그리고 있지만, 한참을 보다보면 이 인물에 공감하고 그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가슴 졸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게다가 <안나>가 보여주는 유미를 둘러싼 저들 세상의 ‘거짓들’은 유미가 하고 있는 거짓 삶이 저들과 비교해 무에 그리 나쁜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만든다.

남편 최지훈은 바로 그 거짓 가면을 뒤집어쓴 인물이다. 대외적으로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이고, 약자들을 위한 기부에 앞장서는 의식 있는 인물처럼 미디어에 의해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운전기사가 단 10분 늦게 도착한 일로 폭행과 폭언을 하고는 해고시키는 비정한 인물이다. 또 정치인으로서 그는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거짓말과 행동도 일상적으로 하는 인물이다. 유미의 거짓과 최지훈의 거짓 어느 쪽이 더 나쁜가. 

하지만 거짓은 가진 자들만 하는 게 아니라 유미의 유일한 선배인 지원(박예영)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더 큰 신문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정치부 기자가 된 지원은 그것이 유미의 부탁으로 최지훈이 힘을 써 생긴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분노한 지원은 유미의 삶이 거짓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지만 바로 그 실체를 폭로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낙하산 인사의 수혜자가 됐기 때문이다.

<안나>는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가져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양극화와 스펙사회,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 겉과 속이 다른 거짓 가면의 사회 같은 현실들을 투영시킨다. 거짓으로라도 버텨내기 위해 맨발로 오르고 또 오르는 그 고단한 유미의 현실이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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