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오락실'과 '유희열의 스케치북', 콘텐츠와 예능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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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오락실'과 '유희열의 스케치북', 콘텐츠와 예능의 본질 
[홍경수의 방송 인문학⑦]
  • 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22.07.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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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나영석 PD가 MZ세대 출연진과 색다른 조합을 보여주고 있는 tvN '뿅뽕 지구오락실'
나영석 PD가 MZ세대 출연진과 색다른 조합을 보여주고 있는 tvN '뿅뽕 지구오락실'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 방송사 직원 연수에서 미래 전략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질문을 받았다. “다른 매체들이 모두 변화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대로 가는 것도 좋은 선택 아닌가요?” 남들이 다 변화하고 있으니, 남들과 다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그것이 특별성을 띠지 않겠냐는 취지로 들렸다. ‘아주 좋은 선택이다’라고 맞장구쳤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신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만약 그 방송사가 ‘변화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시청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면 수긍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왜 콘텐츠를 소비할까? 새로운 소식을 듣기 위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서, 시간 때우기 위해, 즐거움을 찾기 위해 등등의 답이 나올 것이다. 라스웰과 라이트가 매스컴의 기능을 환경감시, 사회요소의 상호관여, 문화적 전수, 오락으로 정의한 대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변화’라는 단어로 모아진다.

그렇다. 대중은 ‘변화’하기 위해 콘텐츠를 소비한다. 우리가 유튜브를 보는 것은 지루한 시간을 재미난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고, 시도 때도 없이 SNS를 더듬는 것도 따분한 시간을 살아있는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내게 없던 정보를 채워 나를 좀 더 유식한 사람으로 바꾸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에 담긴 섬뜩한 의미

변화라는 단어를 뜯어보자. 시라카와 시즈카는 <상용자해>에서 변(變)이라는 단어가 어지러울 련(䜌)과 칠 복(攴)을 합친 글자라고 설명한다. 말씀 언(言)은 신에게 한 맹세의 말로 그 맹세의 말을 넣은 그릇의 좌우에 실 장식(糸)을 붙인 모양이 련(䜌)이다. 복(攴)에는 친다는 뜻이 있으므로 맹세의 말을 넣은 그릇을 치는 것이 변(變)이라면, 맹세를 깨트리고 고친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한 약속도 아니고 신에게 한 약속을 깨뜨린다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목숨을 건 준엄한 행동이다.

화(化)라는 단어는 더욱 극적이다. 사람 인(人)과 죽은 사람 화(匕, 죽은 어미 비)를 조합한 모양이다. 화(匕)는 인(人)을 거꾸로 한 것으로 죽은 사람의 모양이다. 살아있는 사람과 머리와 발이 거꾸로 된 죽은 사람이 등을 맞대고 누워있는 형상으로, 사람이 죽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모든 것은 생과 사를 되풀이하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화(化)란 변화하는 것을 말하고, 화(化)에는 바뀌다는 뜻뿐만 아니라 죽는다는 의미가 있다. 결국 변화란 신에게 한 약속을 바꾸는 도발적인 행위이고, 산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은 끔찍한 반전을 내포한 단어다. 

신을 배반하고 산 사람이 죽는 엄중한 변화를 인간은 왜 그토록 숭앙하는 것일까? 수많은 신화와 역사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인간의 호기심이 답이 될 수 있다. 인류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호기심을 채우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도 하며, 세이렌의 노래를 듣기도 했다. 인간의 역사는 변화를 욕망하는 시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변화로 인한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도 모른 채 혹은 감지한 채, 자신의 운명을 걸고 변화하는 존재. 아이러니하게도 변화에 대한 인간의 모진 욕망은 인간의 역사를 이만큼 끌어온 동력일지도 모른다. 변화 아니면 죽음을 달라! 

<지구오락실>이 참신한 이유

몇 주 전에 방송을 시작한 tvN <뿅뿅 지구오락실>은 나영석 PD가 꾸준히 해왔던 게임과는 유사하지만, 출연자를 ‘MZ 세대-여성-예능인’으로만 채웠다. 먼저, MZ 세대 출연자. 나 PD와 출연자들은 나이차가 한참 나서 기묘한 엇박자가 발생한다. 슈퍼 울트라 하이퍼 텐션을 자랑하는 출연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열쩡’에 치받쳐 당황해하는 나 PD의 모습은 새롭다.

나 PD는 게임의 진행과 운영에서 상식적 합리성을 보여 왔지만, 이번에는 융통성 있게 게임의 룰을 수정한다. 예능인의 생사여탈권까지는 아니지만, 섭외만으로 스타덤에 오를 가능성을 줄 수 있는 PD와 출연자와의 미묘한 관계를 MZ 세대 출연자들은 간단히 폭파시킨다.

둘째로 여성 출연자. 여성만으로 출연자를 채운 것은 <알쓸신잡>과 <신서유기>의 출연자가 전원 남성이어서 성별 다양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오래된 지적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남성 출연자들과 남성 제작자는 ‘형-동생’이라는 호칭으로 자연스럽게 뭉쳐진다. 여성 출연자들이 ‘영석이 형’이라는 호칭을 가져다 쓰는 것은 이런 점에서 패러디로 보인다.

셋째로 예능인 출연자. 출연자를 개그맨과 가수들로만 구성한 것은 신구, 윤여정, 이서진, 정유미, 박서준 등 연기자를 예능에 투입해서 재미를 추출했던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언뜻 보기에 <1박 2일>이나 <출장 십오야>, <신서유기> 등과 비슷해 보이지만 출연자의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예능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신 게임예능이지만 게임오락의 원조라 할 수 있는 KBS <가족오락관>을 오마주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덤이다. 

지난 6월 10일에 나간 '유희열 스케치북' 방송분에 출연한 MC 유희열과 기리보이.
지난 6월 10일 '유희열 스케치북' 에 출연한 기리보이와 MC 유희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지루한 이유

500회 특집에서 회고했듯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노영심,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 등이 진행한 KBS 토크음악쇼의 연결선상에 있다. 1992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1995년 <이문세쇼>, 1996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 2008년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이어지다가 2009년부터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시작되어 2022년 7월 8일 598회를 방송했다.

안테나라는 매니지먼트 회사의 대표이자 작곡 및 편곡자로 성가를 올린 그에게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자신의 영향력을 선보이기 좋은 공간일 것이다. 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지상파 쇼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MC가 갖고 있는 영향력은 마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30을 주 타깃으로 하는 오디언스와 다소 거리감을 갖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점에서 함께 호흡한다기보다는 음악을 가르쳐주는 선생님과 학생 같은 관계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KBS의 토크음악쇼는 청년들의 동세대적 음악적 감수성을 담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쉰이 넘은 그가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노련하지만 그래서 지루한 진행이 13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방송사가 얼마나 변화에 무감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예능의 본질 

인간의 역사를 훑어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작은 기후변화에도 인간의 삶은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 따라서 하늘의 뜻을 묻고 그것에 의지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다. 제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식과 가무. 노래하고 춤추고 공연하는 것은 신을 위한 헌신이었다.

고대의 신이 현대에는 대중으로 바뀌었다.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이돌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연기를 한다. 대중의 마음은 갈대와 같은 것이 아니라,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변덕이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욕구’에 휘둘리는 태도를 말함이다. 이토록 변화무쌍한 마음을 가진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예능은 대중보다 더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변화를 위해 콘텐츠를 본다. 그런데 자신이 기대한 변화의 속도보다 콘텐츠의 속도가 더 느리다면, 대중은 외면한다. 감탄고토가 대중의 속성일 것이다. 콘텐츠와 예능의 본질이 이러하고 신과 대중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면 OTT 시대에 예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료하다. 변화 아니면 죽음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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