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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2004년 12월 23일. 그날부터였다. 내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시작한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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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식 수술이라는 위대한 발명품으로 나의 형편없던 시력이 가공할만한 1.2라는 치수로 탈바꿈한 지 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 엄마 쌈짓돈 300만원이 날아간 순간이었다. 재수술을 받고도 싶었지만 내 눈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떼돈을 벌어 강남 어디론가 새 병원을 차렸다는 소문만 들려올 뿐, 행방을 알 수도 없는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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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안과의사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시력이 나빠졌으니 휴식을 취하시오”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말만 되뇌었다. 그날은 나의 첫 직장, 그리고 4년 동안 나의 일터였던 itv를 폐업한다는 이사회 결정이 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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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v는 방송위원회 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에 따라 불가피하게 1월1일부로 폐업을 의결한다(ifm 포함). 전 임직원의 고용계약은 31일자로 해지된다. itv는 조만간 청산절차에 들어간다.’ 가치를 배제한 사실의 나열이 이렇게 참혹하고 가슴 저리는 것인지 기사를 쓴 기자들은 잘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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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처참함.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실체가 내 시력의 저하로 나타나버린 것이다. 임을 잃은 슬픔에 눈이 멀었다는 전설은 어디선가 들어봤긴 했어도, 직장이 없어져서 눈이 멀었다는 소리는 내가 들은 바 없다. 정말 갑작스런 반응이었지만 내 눈은 알고 있었나보다. 내게 itv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고 나를 pd로 만들어준 곳이었다. 그랬던가. 나에게 pd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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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는 정직하고 냉철한 눈으로 사회의 진실된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그 현실을 창조적으로 다루는 것”이란 새김이 나에게 그렇게 큰 의미였던가. 그래서 pd가 아닌 다음에는 내 좋은 시력이 이제 필요 없게 된 것인가. 내 눈에 비친 사물은 모두 희미해지고 두개가 됐다가 세 개가 됐다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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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제작비를 들여 제대로 된 방송 만들면서 시청자가 사랑하는 프로그램 만들고 싶었다. 후줄근한 옷 입고 며칠 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새서 편집하는 pd일이지만 그것이 내게 고통이라기보다 가끔 감동으로 가슴 먹먹해 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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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봉’을 하게 되고 시사프로인 ‘르포 시대공감’ 22편을 1년 6개월 동안 만들면서 작은 6mm 카메라에 그들의 모습과 얘기를 내 머리에, 내 가슴에, 내 눈에 담았다. 짧은 30분짜리 프로그램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도 알았고 내가 만든 방송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났다는 말을 들으면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가슴 뿌듯함으로 며칠을 잠 못 이루기도 했다. 그렇다 보면 월급날이 되곤 했다. 월급 받기 무섭게 다음달 월급을 생각하며 일하는 내 친구들에 비하면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리곤 난 다짐했다. 앞으로도 월급쟁이 아닌 방송쟁이로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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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움은 그래서 월급쟁이로 살지 않겠다는 itv 방송쟁이들의 열망이다. 이것 만들라면 만들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열망이 파업으로 무노동 무임금 적용을 받아 집에 월급도 제대로 갖다 주지 못해도 가장인 내 선배들을 흔들리지 않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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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불경기에 거리로 나앉다니.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겠으나 “1월1일부터 실업수당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되냐”, “포장마차 하자”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동료, 선배들을 보면서 난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진정 심장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진정성이 있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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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시는 pd로 살 수 없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itv는 역사 속에 사라질 수도 있어도 경기·인천지역 시청자들의 채널권은 어느 형태로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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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v는 하나의 법인이었을 뿐 아니라 방송사라는 시청자들의 공공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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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를 위한 건강한 방송사가 태어날 때까지 진실된 눈을 가진 pd의 모습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안경을 샀다. 세상의 것들이 이제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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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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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승 / i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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