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겨냥한 감사원...‘성역’ 만드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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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피격 사건' 문재인 대통령 서면조사 시도한 감사원
'윗선 조사'도 못했는데...건너 뛴 언론 보도

문재인 정부 시절 장관직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정문 앞에서 감사원의 부당 감사 및 전직 대통령에 대한 무도한 행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왼쪽부터), 황희, 한정애, 도종환, 이인영, 전해철, 진선미 의원.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문재인 정부 시절 장관직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정문 앞에서 감사원의 부당 감사 및 전직 대통령에 대한 무도한 행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왼쪽부터), 황희, 한정애, 도종환, 이인영, 전해철, 진선미 의원.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사정정국에서 으레 등장하는 ‘성역은 없다’는 대사가 최근 나왔다.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의 일환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시도한 서면조사가 기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사실상 처음으로 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사정의 포문을 감사원이 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무차별적 정치감사’라 반발했는데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받아쳤다. 권력자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미 현행법상 전현직을 떠나 대통령이라고 해도 조사 자체를 거부할 수 없고 당위적으로도 ‘성역’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언론이 그리는 현실은 어떨까?

복잡한 현상 속 몇몇 원칙과 핵심 쟁점을 끄집어내어 시민들이 감을 잡게 도와주는 건 상당 부분 언론의 역할이다. 소위 ‘어젠다 세팅’ 기능 중 하나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언론이 만드는 ‘성역’도 생긴다. 무언가를 꺼내 보여줬다면 주머니 속에 숨겨진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 이슈만 해도 이미 언론이 보여주는 현실과 그렇지 못한 현실이 나눠진다.

10월 2일 첫 보도 이후 지배적인 보도 양상 중 하나는 <文 서면조사 VS 尹 외교성과…'신·구 정권' 내일 국감서 싸운다>(중앙일보 10.3)처럼 국정감사의 ‘대결 구도’를 미리 스케치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문재인 대통령도 수사요청 대상이냐’라고 운을 띄우는 기사들도 있다. <감사원, 수사요청 대상에 ‘文 포함’ 초강수 던지나…“현 시점서 예단 불가”>(국민일보 10.3)는 “수사 요청 대상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하는 ‘초강수’를 던질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면서 “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조사 자체를 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을 수사요청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지나친 예단”이라는 ‘감사원 핵심관계자’ 발언을 “일반론이지만 문 전 대통령 수사 요청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조사를 하지도 못했다’는 ‘일반론’이 어떻게 ‘수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도약하는지 의문이지만 그러한 부실함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감사원 감사가 문 전 대통령까지 닿은 이상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 윤석열 대통령 외교 참사 여부, 김건희 여사 의혹 등과 맞먹는 ‘신구 권력 대결’의 쟁점이 될 것이며, 문 전 대통령도 언제든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언론이 그리는 그림 그 자체가 문제다. 언론 이용자들 눈에는 ‘문 전 대통령을 수사를 놓고 벌이는 여야 대결’만이 남게 되는데 그 사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진상은 사라진다. 

실제로 언론도 사태의 맥락과 핵심 쟁점엔 별 관심이 없다.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조사 시도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간간이 검찰과 감사원 모두 실무진까지만 조사하고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 윗선은 손을 못대고 있다는 보도(<서해피격 의혹 수사 늦어지는 이유는> 파이낸셜뉴스 10.2.)가 나오기도 했으나 감사원의 ‘문재인 서면조사’가 알려지자 곧바로 ‘성역은 없다. 문 전 대통령도 조사 받으라’라는 사설까지 나왔다(<文, ‘北 서해 피격’ 감사원 서면조사에 불응해선 안 돼> 세계일보 10.4.)

세계일보 10월 4일자 사설.
세계일보 10월 4일자 사설.

국정원장과 안보실장 등 윗선 조사도 못했는데 감사원이나 검찰이 어떻게 곧바로 대통령까지 치고 들어갔는지, 논리의 공백이 크다. 북에 피살된 공무원의 ‘월북 의사’를 판단했던 핵심 증거이자 김태효 국가안보실1차장이 무단으로 열람했다는 의혹이 일었던 SI(특별취급첩보)와 같은 키워드는 관련 보도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감사와 수사의 이유인 ‘청와대 지침’ ‘2020년 9월 23일 청와대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와 같은 키워드도 사라졌다.

‘전직 대통령 수사’라는 성역을 깨기 위해 기본적 사실들을 ‘성역’으로 만드는 아이러니다. ‘윗선 조사 못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도 수사 받아야 한다. 성역은 없기 때문이다’라는 그림은 누가 봐도 어색하다. 무언가를 빼먹었거나 그릴 수 없는 그림을 억지로 그렸거나, 둘 중 하나이고 둘 다 부적절하다. 

전임 정부를 겨눈 사정정국이 이제 본격화됐으므로 추후 언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지난 5일 <한겨레>가 감사원이 감사위원회 의결을 ‘패싱’한 채 감사를 강행했다고 보도하자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대통령비서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에게 “무식한 소리”라며 ‘뒷담화 직보’를 하는 문자메시지가 포착되기도 했다. 개별 공무원의 비위를 감시하는 ‘상시감찰’의 경우 감사위 의결이 필요 없기 때문에 <한겨레> 보도가 ‘무식하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핵심 인사들을 죄다 털어보는 ‘사정사건’이 과연 ‘개별 공무원 비위 감찰’인지, 이 사정정국이 정말 전 정부의 절차적 불법성을 따지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과 관련된 정무적 판단을 이념적으로 단죄하기 위한 것인지, 이것이 감사원의 ‘대통령실 직보 문자’로 드러난 입장의 핵심 쟁점이다. 지금까지는 언론에게 이것도 ‘성역’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부터라도 언론이 이용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보여줘야하는 ‘현실’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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