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 KBS 「영상기록 병원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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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 KBS 「영상기록 병원 24시」
병원에서 찾아낸 어떤 희망가
조선종
<프로덕션 제이프로>
  • 승인 1998.08.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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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병원은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재활의 드라마가 있고 절망의 노래가 있다. 또한 슬픔의 절규와 탄생의 기쁨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전혀 꾸밈없는 그러나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고 진솔한 인생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생사의 희비가 교차되는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만들어내는 절실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도록 한다.
|contsmark1| 「병원 24시」 기획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실제로 그랬다. 카메라를 들고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내 눈앞에는 뇌사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장기이식 수혜자의 부활의 기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극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병원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들이 넘쳐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기대는 잠깐이고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이 프로그램은 pd가 6mm 소형 카메라로 직접 찍는다. 헌팅 때 스케치하듯 잠깐잠깐 찍어본 걸 제외하고는 여태 머리와 입으로만 찍어봤지 손수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촬영이 만만치가 않았다. 늘 아쉬운 것 천지다. 남이 찍었으면 속으로 욕이라도 하겠지만, 어쩌랴 다 내가 찍은 건데…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 팀은 말 그대로 병원에서 24시간 대기한다. 때로는 소파에서 때로는 의사당직실 한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며 병원을 떠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상황이 벌어질 지 예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촬영기간 내내 한순간도 한눈 팔 수 없는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리고 늘 환자 곁에 붙어있어야만 한다. 일례로 백혈병 투병기를 만든 pd는 아예 옷가방까지 싸들고 무균실에서 환자와 동고동락을 같이 했고, 어떤 pd는 잠시 눈을 붙이려고 할 때마다 매번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 며칠을 뜬눈으로 새우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다. 촬영하느라 제 때 밥 챙겨먹는 일이 거의 없는 pd가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으면 한 환자가 촬영중인 pd에게 자신이 먹던 밥을 강권해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 pd 왈 “행려 환자가 자기 밥을 다 주더라. 그럼 난 그 분보다 더 불쌍한 사람 아닌가?”촬영 도중 가장 허탈할 때는 당연히 중요한 상황을 놓치는 경우다. 아무리 긴장 상태를 잘 유지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일례로 호스피스 병동을 취재하던 한 pd는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담기 위해 하루종일 병실에서 대기하다가 급한 볼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에 환자가 눈을 감고 말았다. 밀착취재가 생명인 우리에게 그런 상황은….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늘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던 카메라가 잠시 사라진 바로 그 순간이 고인에게는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병원 24시」 카메라는 환자에게는 늘 눈엣가시다. 아무리 사전 허락을 얻었다고 하나 환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빠짐없이 지켜봐야만 하고, 더군다나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추한(?) 모습이나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엿봐야 할 때는 정말이지 괴롭다. 어느 의사는 이런 말을 했다. “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동물도 질병(disease)에 걸리지만 병(sickness)에 빠지는 것은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병은 단순히 병 그 자체가 아니다. 어쩌면 병은 그것으로 인한 인간 본성의 변화를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환자 본인도 당황스러울 그 변화를 남에게 숨김없이 보여준다는 것은 그리고 그걸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병원 24시」 는 섭외가 제일 어렵다. 고맙게도 병원 24시 고정 시청자라고 밝힌 어느 환자의 보호자가 정작 촬영 허락을 얻으려고 하니까 극구 반대를 해 결국 촬영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어렵게 섭외를 해 촬영을 시작할 때마다 난 주인공들이 치료 잘 받고 완쾌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또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좀 벌어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프로그램이 재미있으려면 굴곡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 프로그램에서 그 굴곡이란 대개 환자의 고통이나 절망과 맞닿아 있다.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환자가 투혼을 발휘해 그 상황을 이겨낸다면 그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그런 모습을 담고 싶은 욕심이 늘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자주 되뇌는 말이 하나 생겼다. 어느 cf에 나오는 바로 그 말, “나는 나쁜 놈입니다.”한 회 한 회 방송이 거듭되면서 「병원 24시」가 자리를 잡았다. 이젠 고정 시청자층까지 생겼다. 그건 바로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준 많은 환자 분들 덕분이다. 그래서 그만큼 두려움과 고민도 크다. ‘나는 왜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걸까?’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희망? 그럴 수도 있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걸려오는 수많은 전화와 pc 통신상의 글들을 듣고 보노라면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힘과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또 잠시나마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환자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시청자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거기에서 느껴지는 작은 희망들?난 오늘도 병원 어디에선가 환자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환자 아니 ‘그 사람’과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단순한 호기심이나 얄팍한 감상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아파하는 게 무언지를 느껴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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