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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돼 가는 가족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contsmark0|신중의 신 제우스의 딸을 사랑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제우스는 분기탱천해 그에게 지옥 한 구석에서 집채만한 돌덩어리를 저 언덕 위까지 올려놓으라는 벌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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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딸을 연모할 정도로 담대하고 스테미너 ‘짱’이였던 그는 용기백배해 바위를 밀며 언덕을 올랐다. 해가 질 무렵 고지가 저 앞인데 바위는 다시 원위치로 굴러갔고 그 형벌은 영원히 끝이 나지 않았다. 젊은이는 크게 상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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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가 바로 유명한 <시지푸스의 신화>이다. 지난해 8월, <두근두근 체인지>를 끝내고 후속작을 고르던 중, mbc 앞 스타벅스 야외테이블에서 신정구 작가랑 놀다가 ‘괴물가족 모티브’가 나오자마자 번뜩하고 이 신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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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해본 시트콤 <두두체>가 예상 밖의 좋은 결과를 거뒀지만, 사실 내심으론 전 국민의 화두였던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해보겠다는 야심 찬 포부와 달리 초등학교 미취학 아동들(?)과 1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데 그쳐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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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엔 전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하리라 맘먹던 차에 이 가족 아닌 가족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안티테제가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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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릴 때 즐겨봤던 <코스비 가족> 이후 수십 편의 가족 시트콤이 나왔고 그 수명이 끝났다고 얘기될 만큼 지지부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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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영문인지 드라마건 시트콤이건 대가족에 가부장적인 아버지, 삼촌, 누나, 처제들이 우글우글 거리며 아침마다 난리브루스를 치르는 풍경은 예나 저제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건 마치 시지푸스가 바위를 저 언덕위로 언젠가 올려놓을 수 있다고 철없이 믿는 것처럼 영원한 열반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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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솔직한, 오늘을 살아가는, 점차 대화가 사라지고 세대간 갈등으로 해체돼가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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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두일(이두일 분)은 뼈 빠지게 일해서 월급 갖다 바쳐도 자식들과 아내에게 푸대접 당하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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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당연히 뭘 해줘야한다고 생각할 뿐 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시선을 그대로 풍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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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리게 보이면서도 나이가 제일 많은 대왕고모 소피아(박슬기 분)는 요즘 어느 가정에 가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어른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자기 마음대로 호령하는 아이의 모습을 조롱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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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족애를 중시하지만 사회에선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중년부인인 프란체스카(심혜진 분)와 외모와 조건만을 따지는 젊은 여성인 엘리자베스(정려원 분), 그리고 조금 개인적인 얘기지만, 늘 월세문제로 필자와 싸우는 우리 집주인을 풍자한 박 여사(박희진 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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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콩가루 집안 프란체스카 가족 특유의 이 음습하고 괴기한 캐릭터들이 하나, 둘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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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 호러 장르로 사랑을 받아와 대중에게 친숙해진, 인간도 아니면서 귀신도 아닌, 그러면서도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사는, 성장을 멈춘 불사의 몸을 지닌 ‘흡혈귀’라는 낯선 외부자의 시선을 믹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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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날 가족이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지푸스의 형벌처럼 무의미하고 고달프다고 다 까발린 다음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남는다. 신화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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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필자가 제일 좋아했던 알베르 까뮈는 여기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신의 형벌 앞에 시지푸스는 어느 날 신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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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의 형벌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원한 무력감임을 깨달은 시지푸스는 해질 무렵 무서운 속도로 제자리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덩어리 앞에서 처음으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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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방인’에서 마지막에 처형당하는 뫼르소처럼…(사실 내 아이디가 바로 뫼르소이다).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도 아닌 흡혈귀들이 같이 어울려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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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승냥이 같은 가족들의 이기심과 욕구를 두일이는 오늘도 자기 몸을 폭탄에 날려가며, 월급을 송두리째 뺏겨가며, 아내에게 맞아가며 하나하나 보듬어 안을 것이다. 잠시 삐지더라도 돌아서서 다시 곰돌이 푸우처럼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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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프란체스카>는 아직 진행형이다. 어떻게 끝까지 무사히 필자가 바라는 대로 끌고 갈지 모르겠다. 어차피 돌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줄은 알지만, 필자도 돌이 떨어질 때 그 한순간의 무지막지한 쾌감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계속 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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