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법부의 판결이 가져온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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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법부의 판결이 가져온 연대
  • 전미희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협동사무처장
  • 승인 2005.03.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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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10·26을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사람들>(감독 임상수/제작 mk필름)과 관련해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냈을 때, 언론보도가 나가면서 영화는 약간의 홍보효과와 함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설마 사법부가 시대착오적 판결을 내리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달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다큐멘타리 세 장면, 즉 △부마항쟁 시위장면 △박 대통령이 사망한 뒤 김수환 추기경의 조사낭독 장면 △박 대통령의 장례식 다큐멘터리 장면에 ‘조건부 상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영화 문화계 및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잇다른 성명서를 냈고,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문화연대, 스크린쿼터문화연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표현과 창작의 자유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을 제 시민사회단체에 제안했다. 그리고 지난달 23일 163개 단체가 참여한 범대위가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이 판결은 여러 곳에 충격을 준 것 같다. 제작사는 물론이고,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단체나 개인에도 말이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은 근본적인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라는 것이 공통된 인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기본법이다. 과거 공권력은 표현의 수단인 출판, 언론, 영상, 음반, 문학 등을 광범위하게 억압함으로써 통치수단으로 활용했다. 영화에서 사전 검열제도는 영상물등급제로 바뀌어 형식적인 검열은 없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가 법의 이름으로 표현과 창작의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는 아직 멀었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얘기할 때 우리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과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곧잘 비교한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주인공인 <화씨 911>은 부시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가처분신청은 커녕 극장에서 당당하게 상영이 됐고, 2004 칸느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았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다른 단면이다.

2004년 영화 <실미도>는 1000만 관객 시대를 열었고 이후 영화는 양적, 질적으로 동반성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제작되는 과정에 <그때 그사람들>도 만들어졌다.

<그때 그사람들>은 본격적인 정치영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관객에게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사회적 논란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관객으로부터 받아야할 냉혹한 판단을 사법부가 먼저 내렸으니 반은 죽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영화의 소재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로 영화제작이 기획단계부터 자기 검열을 하게 되면서 창조적인 제작에 위축을 가져올 소지는 다분하다. 향후 한국영화 창작에 족쇄를 채울 수 있는 이번 결정 이후에 정치적 사건을 다룬 영화 여러 편이 제작을 앞두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삼청교육대,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나, 언론통폐합을 다룬 ‘tbc가족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등 과거사를 다룬 영화작품들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범대위는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계획을 잡고 있다. 3월 2일부터 시작한 △법원 앞에서의 1인 시위 △표현과 창착의 자유 관련 토론회 △법원에 의견서 제출 △국제문화단체를 통한 지지 서명운동 순으로 사법부를 압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제작사측은 본안 소송과 온전한 감독판을 관객이 볼 수 있을 때까지 1개 상영관을 대여해서라도 계속 투쟁한다는 방침이다. 범대위 사업은 위에 열거한 계획 이외에도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계속 진행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영화계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70~80년대부터 영상물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이 21세기 새로운 공권력인 사법부의 등장으로 연대를 급속하게 결집시킨 계기를 마련했다. <그때 그사람들>에 대해 서로 이해가 다르고 복잡한 영화계가 하나의 ‘이슈’로 범대위에 함께 한다는 건 의미가 있다. 앞으로 범대위는 향후 실천적인 사업을 통해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하는 역할이 남아 있다.

전미희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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