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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둔다…

여당이 당정협의를 거쳐 확정한 이른바 통합방송법을 놓고 시비가 무성하다. PD연합회를 비롯한 방송직능단체나 노동조합 그리고 이 문제에 비상한 관심과 노력을 경주해온 시민단체들이 정부여당의 방송독립에 관한 의지를 의심하고 함량미달임을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방송위원회 구성에서의 정치적 공정성이나 위성방송의 대기업과 외국자본의 지분 등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정부여당은 마땅히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그런데 재미있는 풍경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례적으로 방송협회가 이 방송법 논의의 마당에 뒤늦게 뛰어든 것이다. 방송협회의 의견을 일별해 보면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제기할 만한 내용으로도 여겨진다. 편성규약 제정이나 주시청시간대에 특정 방송분야의 편중금지 등 편성에 관한 각종 장치들은 방송사의 자율권과 차별성을 위축하는 규제 만능주의의 소산으로 볼 수도 있겠으며, 특히 외주비율에 대한 의무편성비율 설정은 기존 지상파 방송의 여건을 고려할 때 속도조절이 필요한 대목으로 볼 수도 있다.그러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그러한 개별적인 내용이 아니다. 방송협회의 이같은 문제제기는 대체로 우군이 없는 가운데 정부여당은 물론 관련 학계나 시민단체로부터도 썰렁한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다. 방송협회가 얼굴마담으로 나서서 방송사의 의견을 표명하고, 또 일부 방송사의 현업에서는 노조나 시민단체가 간과하는 이들 조항의 잠재적 독소성에 대해서 오로지 애사심과 충정의 발로로 각계각층에 호소하고 있지만 우호적인 메아리로 돌아오지는 않는 듯하다.여기서 이땅의 방송이 어떻게 해서 이다지도 엄청난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개정 방송법이 총론에서는 편성의 독립과 자율성을 선언하고도 개별 사안에서 각종 의무조항이나 금지조항을 잔뜩 열거하고 있고 벌칙조항만 무려 40여가지로 그것도 현행보다 형량이 훨씬 강화돼 있는 등의 방송법안을 놓고 시니컬하게 말한다면 한마디로 방송인은 거의 우범자로 취급되고 있다.뿌린 대로 거둔다고 그동안 우리 방송이 얼마나 불신의 대상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돌이켜보면 권위주의 시대에 순치됐던 우리 방송은 땡전뉴스로 대표되는 편파 왜곡보도로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급기야는 반정부 감정을 표출할 때의 표적이 되기까지 했다. (시청료 거부운동은 그것의 가장 극적인 표출이었다) 방송은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이 있던 때에 축소보도에 급급하다 때마침 김만철 일가의 대량 탈북이 있자 국면전환을 하려 했던 것인지 메인 뉴스의 일본 현지 진행을 서슴지 않았다. (제대로된 보도라면 남영동 앞에서 하는 것이 옳지 않았겠는가) 그런가 하면 “묘향산에 해수욕갑니까?”와 같은 보도로 민족의 화합을 저해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그 와중에 제작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PD야 편성과 기획의도에 철저하게 복무했을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선정, 폭력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일부 프로그램의 불건강성은 국민의 우중화 논란을 야기한 가운데 두고두고 방송때리기의 메뉴가 되고 말았다. 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어느 정도 확보된 이즈음 방송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이제는 제작 프로그램의 폐해가 논의의 주대상이 되고 있다. 이솝 우화 양치기와 늑대 이야기에서처럼 한번 누적된 불신감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그 뒤로 젊은 방송인을 주축으로 하여 권력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벗기 위하여 지난한 노력을 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만 어찌 그 원죄를 다 속량했다고 할 수 있으랴. 방송을 그렇게 농단하고 자신의 지위 상승에 이용했던 사람들은 지금 방송계에는 있지 않다. 그러나 유취만년(遺臭萬年)이라 했듯 그들이 뿌리고 간 악취는 남은 방송인의 업보가 되어 있다.씨알이 먹히지 않는 방송협회의 주장. 방송사의 자율권이 침해받는다는 항변에 그러지 않았을 때에 언제 방송이 제대로 해왔느냐는 의심에 찬 힐난이 돌아온다. 이는 사실상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일일 터다. 하지만 이땅의 프로듀서들은 오늘도 그 방송 프로그램만을 지고로운 가치로 알고 긴긴 출장에 밤샘편집을 마다 않는다. 이 기묘한 현실이 바로 우리 방송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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