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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희노애락을 담는 새 접근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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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꾸며 산다. 그런 사람들이 만나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내며 때론 따지고 어르고 꼬드기는 일’, 요즘 내가 구상하는 토론은 이렇게 좀 엉뚱하다. 이성과 논리. ‘토론’하면 으레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느님은 인간에게 로고스만을 허락하지는 않으셨다. 토론에 나서고 지켜보는 이들은 그 누구든 오욕칠정의 인간군상에 속하지 않는가?

‘지만원 대 진중권’ 토론은 프로그램 준비 때부터 끝이 난 지금까지 토론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꽤 높다. 사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목소리만 키워준다”, “싸움판으로 전락한 저질토론이다”…. 하지만 친일발언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고, 과거사를 둘러싼 그간의 논란들을 짚어보면서 우리네 상식을 뛰어넘는 생각과 감정들이 의외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꼭꼭 숨어있음을 알게 됐다.

반세기를 위풍당당 자라온 사상과 정서가 소통의 장에서 제대로 해소되지 못할 때 그건 바로 이념, 혹은 집착이 된다. 이념의 골은 깊어지고 역사의 진실은 더욱 아득한 곳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 마음을 불러내어 감춰진 얘기를 속속들이 끄집어내고 싶었다. 오욕의 역사에 재갈을 물린들, 이성과 논리로 단단히 무장해 필살의 논박으로 승리의 성취감을 맛본들 무엇 하겠는가? 누군가는 이렇게 다짐할 것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언젠가는….”

논리와 수사로 명쾌하게 일갈하는 토론보다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드러내놓고 함께 울고, 웃고, 되씹고, 분노하는 자리가 우리에겐 필요했다. 우익과 좌익, 보수와 진보의 번뜩이는 이빨 싸움이 아니다.
사랑하는 곱단이를 정신대로 보내고 먼 훗날 그 여자네 집 앞에 선 만득이의 마음, 동생 학비를 위해 밤낮없이 미싱을 돌려야 했던 누이들의 주름진 손, 5·18 계엄군 출신의 고통스런 참회…. 이 모든 것들이 깨어진 항아리 조각을 맞추듯 하나하나 마음속에서 복원되길 바랐다. 진정한 역사의식은 ‘이념적’으로가 아니라 ‘실증적’으로 성장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그러기 위해선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마음 속 전쟁을 끄집어내는 악역이 필요했다. 우리의 토론은 그렇게 준비됐다.

‘지만원 대 진중권’ 녹화방송이 끝난 토요일 오후 집 안방. 원희룡 의원의 공개토론 제안이 인터넷에 떠올랐다. 의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의사타진을 한 후 곧장 생방송 특별편성을 데스크에 제안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인터넷 생중계 결정을 포함, tv본부장의 최종 결재를 얻은 뒤 5~6시간의 줄다리기 끝에 양측으로부터 최종 수락을 받아냈다(타방송사의 제안 있었음). 공개토론 제안, 지만원 박사 2주 연속 출연, 보수 진영간 격돌, cbs tv 첫 생방송(뉴스 제외) 및 인터넷 생중계, 친일 및 독도 관련 이슈화 등 안팎으로부터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한 기획이었다.

생방송 당일. 출연자 사이에 간단한 인사만 허용한 뒤 별도의 대기실에서 방송 준비를 하게 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 정사복 경찰의 지원을 받아 출연자 에스코트까지 한 마당이여서 스튜디오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처럼 긴장감이 흘렀다. 방송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진행에 어려움이 무척 많았다.

발언 시간 안배, 주제별 시간 안배 등등. 지만원 박사가 “무전기를 가지고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아 사회자에게 손으로 연신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라고 홈페이지에 지적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생방송 진행 중인 사회자가 주제와 시간 안배를 제대로 하도록 부조정실의 pd가 인터콤을 통해 스튜디오의 fd에게 콜을 보낸 것’이라는 것쯤은 방송pd 제위께선 누구나 알 터이다.

지금도 게시판과 전화를 통해 계속되는 시청자들의 격려와 항의로 마음의 부담이 여간 심한 게 아니다. 한편으로 많은 분들에게 고통과 분노를 지나치게 안겨드렸다는 죄책감이 있다. 그런가 하면 토론이라는 게 냉철한 이성을 앞세워 속내를 정치적으로 위장하는 것보다 때론 한 편의 드라마와 코미디처럼 정서와 감정마저 솔직하게 드러내놓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시청자는 분명 이성적으로 판단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감응하며 우리의 역사와 사회 문제를 이념을 넘어선 삶의 문제, 인간의 문제로 받아들였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 동민( 동료 pd. 이번 토론 극렬주창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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