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눈] PD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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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눈] PD의 공간
  • 홍경수 KBS 방송문화연구팀
  • 승인 2005.04.28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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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방송사 입사 전에 신문사에서 편집 일을 할 때, 누이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신문사 편집국에서 쪼그리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누이는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럴듯한’ 신문이 이런 공간에서 만들어진다는 데 대한 놀라움과 안타까움의 표현이리라. 공간의 효율적 활용으로 경제적 효과를 높이려 한 기업으로서의 선택이 좁고 어두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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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벨트의 기능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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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에 입사한 뒤엔 사무공간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왜냐면 pd는 사무실이 아니라 스튜디오, 야외, 편집실 등 현장에서 발로 뛰어야 하는,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에도 없는(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돌아다니는 일이 없는 시간에 뛰어나갈 준비를 하는 대기소 정도로 여겨졌다.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는 것이지 책을 보는 것처럼 집중력이 필요로 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새 프로그램을 구상하거나 작가들과 심도 깊은 얘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외부 손님을 자리에서 맞아 환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론 회의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무실 주변에 회의 탁자와 의자가 군데군데 배치돼 있다. 하지만 다른 팀이 회의하는 소리가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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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만난 한 선배는 “뒷사람과 의자 등이 닿아서 불편할 뿐 이미 충분히 적응했다”는 체념을 들려줬다. 도대체 뒷사람과 의자 등이 부딪히는 환경에서 어떻게 새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까? pd 1명의 공간이 1평도 채 안 되는 손바닥만한 곳에서 ‘국민의 정신건강을 책임 질’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좁은 공간에 나란히 앉아 일하는 pd들의 모습은 컨베이어벨트 작업대에 앉아있는 기능공이나 콜센터의 전화상담원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나 콜센터도 등이 부딪히거나 옆사람 소리 때문에 일을 못할 만큼 인간공학을 무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pd들에게는 작가와 자료조사 fd 등 딸린 식구들이 적지 않아 혼잡도는 더하다. 한 pd는 “의자들이 너무 붙어있어서 반갑지 않은 매니저를 따돌리는 데는 최고”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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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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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들이 자리에 앉지 않고 계속 밖으로만 뛰어다니게 하는 데도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함께 모이기 어려운 분절화된 pd문화. 그 시원에는 좁은 사무공간을 통한 pd들의 현장 내몰기가 자리하고 있는지, 또한 생각보다는 기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찍어내기를 기대하는 방송철학이 공간으로 반영되었던 것은 아닌지, 넓게 산재한 pd들보다는 한눈에 모든 pd들을 다 보고 싶어 하는 관리마인드는 없었는지…. 이제 시대의 풍경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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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s는 본관 로비를 시청자 광장으로 만들었다. 민주광장으로 불렸던 공간을 시청자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시킨 데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여의도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뿐 아니라 직원들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죽어있는 공간을 되살려 휴식 공간으로 만드는 공간변화의 현장을 목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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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투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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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모 통신기업을 방문했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남산 아래 자리 잡은 현대식 사옥은 그렇다 치더라고, 사무실 안은 조용한 도서관 같았고 직원 1명의 사무공간은 3평정도로 널찍했다. 직원들은 자기 손님을 위한 의자를 옆에 두고 있었고, 간단한 협의도 가능했다. 방송에 진출하고자 온힘을 다하고 있는 이 회사에는 방송사에 없는 것이 있었다. 공간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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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가 오락가락하는 현장’에서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야 하는’ pd에게 무슨 사치스런 사무공간 타령이냐는 질문에 이제는 pd들 스스로 답해야 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답하지 않고 체념한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거저 주지 않는 것이 세상의 냉엄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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