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1 - MBC <다큐스페셜-용가리 타고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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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영구’의 틈새시장 공략 예찬
송일준
MBC 교양제작국 차장대우

|contsmark0|수 년전,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대통령에게 ‘첨단영상산업 진흥방안’이라는 것을 보고했다. 영화 비디오 방송프로그램 씨디롬 등의 영상물 제작산업이 21세기에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대두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으레 그렇듯이 말은 말로 끝나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늘 보아온 우리네 병폐. 정부가 영상산업 진흥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고 제법 그럴 듯한 방안들이 마련된 듯이 보도되고 하면서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21세기형 무공해 첨단산업’이 경쟁력을 붙여 세계무대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뉴스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내가 우리회사의 국제협력팀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맨 처음 가본 국제적인 방송프로그램 마켓(프랑스 깐느에서 열리는 mip)에서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거래되는 모든 방송 가능한 영상물이 그저 왁자지껄한 시골의 5일장터에 진열돼 장꾼들의 눈에 띄어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상품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지 않느냐는 참으로 맥이 빠지는 묘한 느낌. ‘바보 영구’로 알려진 개그맨 심형래 씨가 세계적인 영화제작자로 변신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국제협력팀에 잠시 있게 된 것을 계기로 국제적인 수준의 영상제작물을 그것도 돈이 되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어줍잖지만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심형래 씨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다른 어떤 사람 못지 않은 강력한 공감을 느꼈다. “개그맨이자 영화감독이며 제작자인 심형래 씨의 작업이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볼 정도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제대로 정리해서 세상사람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켜 주자”―이것이 <다큐스페셜-용가리 타고 세계로>를 기획한 의도였다.작년 한해동안 우리나라는 6천9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외국영화 수입에 쓴 반면에 우리 영화의 해외수출액수는 겨우 2백7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 2백70만 달러라는 금액은 총 37편의 완성된 영화를 팔아 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 한 편으로, 그것도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만들어진 2분 남짓한 예고편 한 편으로 심형래 감독이 달성한 용가리의 사전판매고가 2백72만 달러에 이르고 있으니 이 어찌 감탄해 마지않을 일이 아니겠는가.심형래 감독의 작업이 시사하는 바는 또 있다. 영화도 산업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사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이 정력을 외화수입에 투입함으로써 수입단가를 터무니없이 올려놓는 짓거리를 자행하고 있을 때 심형래 감독은 바보처럼 그저 묵묵히 공룡이니 외계인이니 하는 공상과학영화 한 우물만을 파오면서 그 제작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그 외에 심형래 감독이 대단한 점은 바로 그 행동력에 있다. 니취마켓(niche market) 이른바 틈새시장에 대한 공략을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고 꾸준히 실천해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상과학 괴수영화라는 장르였다. 특히 세계문화의 한 변방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이성을 가급적 배제함으로써 이문화권의 사람들이 느낄 수도 있는 거부감을 희석시키는데 유리한 공상과학 괴수영화 장르를 주종목으로 채택하고 영화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영어 대사를 채용하고 미국인들(서양인들)을 주요배역에 기용하는 등의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심형래 감독 이외에 우리나라의 어느 영화제작자나 감독들에게도 없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나는 이런 점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부각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로 다음과 같은 수단을 썼다.- 전달하고자 하는 기획의도가 흐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영화가 문화니 예술이니 산업이니 하는 논란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영화는 상품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심형래 감독의 지론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는 쪽으로 구성을 몰고 갔다.- 귀에 익은 성우 목소리보다 시청자에 대한 설득력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그대로 믿기로 하고 직접 내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했다.- 다루는 소재가 공상과학 영화인만큼 일부러 약간 많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 정도로 화면효과를 많이 썼다.- 크로마키 인터뷰, 인터뷰와 동시에 관련자료 흘리기, 나레이션의 양을 줄이고 가급적 현장음을 많이 살리기 등등 의도적으로 수공을 많이 가미했다.방송 결과 시청률면에서는 일단 십퍼센트 대를 돌파함으로써 합격선을 넘었지만 늘 그렇듯 애초의 기획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작품의 완성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하는 문제 등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로 미루어 헤아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방송이 나간 후 들려온 시청자들의 몇 가지 반응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영화라는 것을 심형래 씨처럼 접근하는 것도 우리 영화가 살길 중의 하나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영화는 예술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반 무역상품과 다를 바 없는 상품이라는 논리로 일관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려는 심형래 감독의 노력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예술 예술 하면서 정작 수준있는 예술 영화 하나 못 만드는 주제에 심형래 감독이 하는 일을 깔보는 사람들이 영화계에 많이 있다는 것은 진짜 웃기는 일이다.·심형래 감독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영화수입에 열 올리는 대기업은 반성하라.·영화산업이 어떻고 니취마켓이 어떻고 말로만 떠드는 정부관계자들과 대학 선생들이 봐야 할 프로그램이다.좋은 소리들만 모아놓은 감이 있는데 덧붙여 두자면 이런 반응들은 나한테 직접 시청소감을 말해준 사람들 것이므로 그리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비판적인 의견도 많았겠지만 그런 것들은 대개 내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고 한 다리 건너서 들은 것이어서 여기서는 생략했음도 알려둔다. 글쓰는 사람의 애교로 너그럽게 봐주시길!|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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