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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몽골의 칭기즈칸은 세계를 호령해 본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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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몽고가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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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이후 세계를 점령해 본 또 다른 동양인은 무슬림이다. 불교를 간직하였던 인도만이 지리적으로 이슬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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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점령지에서의 자치를 허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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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또한 종교를 받아들이고, 세금을 내는 대신 점령지에서의 자율권을 허락했다. 몽고와 이슬람의 떠돌이 문화가 당시 그리고 오늘날 숭앙받는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할 유산으로 일컬어진다. 점령지에서의 융통성을 발휘할 만큼 그들은 자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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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과 이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자비한 보복과 처참한 살육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칼과 자유, 그 앞에서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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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앞에서 저항하였던 또 다른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민족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민족이다. 앞으로 유전학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검증과정이 무수히 필요하겠지만 몽골의 뿌리는 우리 민족이다. 몽골과 우리 민족의 문화적인 유사성이야 얼굴 생김새가 이미 말해주고 있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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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위, 도투락댕기 등 몽골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몽골의 선조와 같은 뿌리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 중에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건 말건 엄염한 인류학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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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본받자는 소리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세계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유럽의 피 뿌린 정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오해했던 공화제조차 몽골의 역사에서 유래한 것이라니, 일찍이 유목민과 농경민의 투쟁의 역사라고 하였던 토인비의 혜안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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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라는 우리 선조들은 진리를 꿰뚫고 후세에 값진 금언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후세는 아주 뻔한 진리를 공기처럼 무시하고 있었다. 편협하고도 위험할 수 있는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이 손이 안으로 굽는 게 한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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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얼리 어답터가 아니어도 나로서는 mp3와 카메라폰을 ‘무장하였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젊은 친구들에게는 이제 그런 새로운 기기는 이상할 것 없는 휴대기기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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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복학 후 접한 컴퓨터를 초등학교 1학년 우리 집 꼬마는 물론이고, 네 살짜리가 게임을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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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신이 잘났다고, 그래서 하늘 밑에 오롯이 숨쉬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이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래서 용인된 기회를 낚아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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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배는 순응하는 자는 데리고 가고, 거스르는 자는 놔두고 간다는 진리는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잊고 있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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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과 이슬람은 자신들의 영토가 삶조차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왔고, 풀이 보이는 곳을 따라, 물이 있는 곳을 따라 이동했고, 그래서 칸 또는 한(汗)을 세계사 속에 남겼다. 움직이지 않으면 뒤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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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자는 진보하지 못한다는 아주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사는지 모른다. 나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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