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평 : 감청 남용 - 사생활 경시하는 풍토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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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운
변호사·KBS 시청자위원

|contsmark0|지루한 국회파행이 끝나고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수사기관·정보기관에 의한 감청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법원행정처와 정보통신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97년 수사기관이 법원에 청구한 감청영장은 3천3백6건으로 96년 2천67건에 비해 1.6배나 증가했고 수사기관의 감청 협조 요청은 95년 1천9백74건에서 97년 6천2건으로 2년만에 3배 이상 늘었으며 올해는 6월까지 3천5백80건의 협조요청이 접수되어 역시 작년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새 정부 들어서도 공안기관과 수사당국의 우편검열이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경찰청과 기무사의 우편검열 회수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이 문제가 불거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불법 도청, 불법 감청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라고 국민회의에 지시한 가운데 법무장관도 지난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긴급통신제한 조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검찰에 특별지시를 내렸으며, 감청을 시작한 즉시 지체없이 영장을 청구하고 기각되면 그 즉시 중단하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답변했다.이에 따라 여당은 현행제도를 일부 손질하면 미비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반면 야당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기 전과 정반대의 상황이 된 것이다.하지만 단순히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한다고 하여 수사기관에 의한 불법감청이나 도청이 근절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contsmark1|수사기관의 전화감청은 93년 정기국회에서 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에 근거한다. 이 법은 수사와 범죄방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판사가 발부하는 영장에 따라 정보통신부의 협조를 받아 피의자의 전화를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이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정권유지 차원에서 통신의 도청 및 감청, 우편물 검열이 광범위하게 진행돼 윤석양 이병이 폭로한 보안사에 의한 민간인 사찰사건 등에서 보듯이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해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 법을 ‘개혁입법’의 차원에서 여야합의로 만든 것이다.그러나 이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감청’이란 이름으로 합법화된 전화도청이 ‘과학적 수사방법’의 주요수단으로 애용되어 왔고, 또 일반 사인(私人)간에 있어서도 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 행위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어 와 도청은 어쩌면 ‘일상화된 생활’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 정도다.여기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야 어떻든 실적만 올리면 된다는 수사기관 등 권력기관의 편의주의와 흔히 개인의 사생활을 사사로운 것으로 경시하는 일반인들의 비뚤어진 통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이동통신의 발달로 인한 통신의 폭주, 그리고 저렴하고 고성능인 도청기의 범람도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도청이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우리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다. “기자는 개인의 전화도청이나 비밀촬영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신문윤리실천요강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그러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청이나 사생활 침해는 그 반사회성에 있어 고문이나 강력범죄 못지않은 중대한 인권유린이자 비열한 범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contsmark2|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과 형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통신의 비밀이나 사생활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는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제도라도 개인의 사생활을 경시하는 법문화적 풍토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법제도가 남용 또는 악용되는 경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올해 통신제한(우편검열) 영장에 대해 단 한건도 기각하지 않고 100% 허가해준 법원도 더 이상 이 문제에 관한 한 인권의 보루라고 보기 어렵다.
|contsmark3|작년에 일본의 모 텔레비전 방송사는 도청기 발견 전문가를 대동하고 거리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나 전신주 그리고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을 분주하게 찾아 다니면서 몰래 설치된 도청기를 찾아내는 현장감있고 스릴 넘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바 있다.우리나라 방송에서도 기획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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