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눈] 발터 꼬르벨리니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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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눈] 발터 꼬르벨리니의 행복
  • 관리자
  • 승인 2005.10.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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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오정호 ebs 정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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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유월의 어느 날, 나는 달리는 협궤열차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모데나, 파르마를 거쳐 도착한 피덴차에서, 다시 부세토(busseto)라는 작은 마을을 향해 지선으로 갈아탄 뒤였다. 서둘러 가는 승객도 없고 기차 역시 빠르게 달릴 의욕이 없는, 오뉴월의 뜨거운 햇볕 속을 기차는 그렇게 고물 트랙터마냥 그냥 철커덕거리고 있었다. 이따금 철로 옆 밭에서 뿌려대는 스프링클러의 물세례가 먼지 묻은 차창을 타고 흘러 내렸다. 당시 내가 그렇게 부세토를 찾아가던 이유는 주세페 베르디의 흔적 때문이었다. 부세토 옆 산타가타 (sant’agata)라는 곳에서 베르디와 그의 부인은 그들의 아름다운 말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산타가타 별장은 베르디의 유언대로 그 당시 모습대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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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날이 너무 더운지라 걷기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으면서 나는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친절한 여주인은 친숙한 번호인 듯 버튼을 꾹꾹 누르더니 택시기사와 연결해 주었다. 바쁘다. 그러냐. 하지만 지금 다른 손님 모시고 있다. 정 원하시면 내일은 어떠냐. 돈 더 준다고. 안된다 오늘은. 결국 그날 나는 택시를 타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택시가 부세토의 유일한 택시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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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부세토의 유일한 택시기사를 떠올린 건 행복에 대한 나의 어줍지 않은 관심 때문이다. 기껏해야 몇천명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사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발터 꼬르벨리니, 그의 행복은 무엇일까. (그의 명함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기념품이 되었다) 이따금씩 걸려오는 주민들의 전화일까. 아니면 흙바람 날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의 손맛일까. 아니면 파르메산 치즈와 와인을 곁들인 긴 점심시간일까. 이 모든 게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추측컨대 그의 행복은 부세토에는 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택시기사가 없다는 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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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라야드(richard layard)가 쓴 책 <행복 happiness>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이 언급되어 있다. 물건들의 가격은 동일한 두 가지의 상상세계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2만5000 달러를 받는 반면 당신은 5만 달러를 받는 세계와 다른 사람들은 25만 달러를 받는 반면 당신은 10만 달러를 받는 세계가 있다고 치자. 당신은 어느 곳에서 살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대다수의 하버드 대학 학생들도 첫 번째 세계를 선택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우리가 점점 많은 소득과 삶의 이기를 가지면서도 여전히 궁핍함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을 설명해준다. 우리가 우리의 소득에서 느끼는 행복, 또는 행복감은 사회적인 비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즉 불행한 우리는 행복한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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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행복은 철저하게 남과는 다른, 남과는 비교되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그려지는 편이다. 조기유학을 통해 자녀들을 미국의 유수대학에 입학시킨 억척스런 어머니, 연봉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프로스포츠 선수들, 갓 결혼한 연예인들의 신혼살림집, 재벌집의 며느리가 된 미모의 탤런트 등 상대적으로 가정주부, 소시민들의 일상적 행복은 참 초라하게 보인다. 그러면 혹자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tv가 일반 사람들의 행복을 생각해 보기에는 부족한 매체인 것 같다고. 하지만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철학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bbc의 tv프로그램들은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닌, 삶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방송에서 흔히 그려지는 행복의 주어가 타인들이었다면, 이 프로그램들은 과감히 나를 주어로 하는 철학적 물음을 던지게 한다. 나는 행복한가. 어떻게 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철학의 위안>, <여행의 기술>, <지위에 대한 불안> 등 그의 책들 속에는 자기성찰적인 문장들이 오롯이 들어있다. 우리가 사랑할 때, 길을 떠날 때, 불안할 때 등 삶의 곳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만난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돌리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진정 소중한 tv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행복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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