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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과 조갑제

|contsmark0|옛날에 - 거의 10년전쯤일이다 - 어느 방송사에 이런 일이 있었다. 시인 고은 선생에 관한 문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순조롭게 제작돼 방송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완제품 테이프가 주조로 넘어간 뒤의 시점에서 고은 선생 신상에 문제가 생겼다. 학원에서 재야에서 통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그 시절, 고은 선생 또한 민족시인으로서 여기에 왕성하게 참여를 했었고 그중의 어느 부분에서 실정법을 현저히 위반했던 일이 있었나본데 이에 대해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것이다.여기까지는 별 얘깃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 방송사의 일부 간부들이 집행유예도 실형에 속하는데 그렇다면 ‘범법자’ 고은을 긍정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예고까지 나간 해당 프로그램의 방영저지를 시도했다. 이 확실한 순발력, 이 똑소리나는 법지식, 이 철저한 직업의식… 충혈된 눈으로 한건하기 위해 뛰어 다녔을 그 간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 이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문학인 고은의 작품세계를 다룬 것일 뿐이며 더욱이 확정판결이 난 것도 아니지 않느냐던 젊은 후배들의 간곡한 호소가 들릴 리 없었으리라.이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일이 있다. 그로부터 10년여가 지난 뒤인 지금의 일이다. sbs <라디오칼럼>이란 프로그램의 출연자중 한 사람인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이 모름지기 ‘공정하고 균형적이어야 할’ 방송에서 공인의 사상검증을 한다며 평소 월간조선에서 하던 방식대로 최장집 교수를 거두절미해 마구 비난했다. 그러자 방송위원회에서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조항을 위반했다고 경고를 내렸다. 그런데 조갑제 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 다음주에 또 최장집 교수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을 계속했다. 방송위원회에서는 이에 대해 같은 이유로 다시 경고를 내렸다.2주 연속 문제되는 방송에 2주 연속 방송위원회 경고. 대개의 경우 이 정도면 당연히 문제의 출연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방송위원회 규정에도 경고를 받고도 반복해서 규정을 위반할 경우 방송 책임자나 관계자에 대해 특별한 조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sbs는 “공정성 위배는 출연자로서 문제있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무슨 영문인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고서는 한다는 말이 “어차피 99년 1월 1일부터 표준fm 방송실시와 함께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이 예정돼 있다. 그때 <라디오칼럼>도 자연스럽게 정리하면서 조갑제 국장건도 처리할 수 있는데 뭐 몇 번 방송이 남지도 않은 시점에서 굳이 퇴출시킬 것까지 있겠는가. 책임을 물을 것도 검토해봤지만 그것은 출연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식이다.들머리에서 예를 든 내용과 작금의 이 일은 당연히 다른 사안이고 관련된 사람도 다르다. 그렇지만 10년전 그때 그렇게 신속하게 고은 선생 프로그램을 처리하던 사람들의 그 신속함과 단호함을 기억하고 있는 필자는 적잖게 당혹스럽다. 그동안 우리 방송계에 준법정신이 현저히 감퇴한 모양이다. 아니면 직업의식이 해이해진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기막히게 선택적으로 작동되는 그 순발력의 회로 체계에 찬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라디오칼럼>의 칼럼니스트엔 조갑제 국장 외에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도 있고, 수원대 이주향 교수도 있다. 그들은 적어도 프로그램만 놓고 보자면 조갑제라는 모진이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방송사측은 대개편과 함께 <라디오칼럼>을 폐지하더라도 박 변호사와 이 교수는 계속 출연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문제다. sbs에겐 조국장에 대한 예의만 중요하고 박 변호사나 이 교수에 대한 예의는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아가 물의를 빚은 출연자의 방송을 계속 들어야 하는 - 그 회수가 몇 번이든 - 청취자에 대한 예의는 과연 고려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필자가 여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근본적인 책임이 방송사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방송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며,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는 관련된 집단이나 개인의 의견을 균형있게 다루어야” 하고 방송사는 그 의무를 수행하는 법적 실질적 주체다.이와 관련해 sbs노조에 고언을 드리고자 한다. 분사 등 구조조정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중요한 조합원의 신분에 관한 사안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연합회로서도 마음으로 성원을 보낸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한국의 방송노조가 본연의 책무로 삼고 있는 공정방송 수호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쳤으면 한다. <라디오칼럼> 역시 sbs의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내부적인 논의구조를 거치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본보 발행인> |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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