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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예산은 정책이고, 정책은 예산이다.” 필자가 연수 중인 ire(미국 탐사기자·편집인협회)의 사무총장 블랜트 휴스턴이 美 미주리大 저널리즘스쿨 ‘탐사보도론’강의에서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돈이 정책이고, 정책이 돈”이라는 이 경구는 탐사 저널리스트들에게 ‘돈의 궤적(money trail, money track)’을 추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마디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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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워싱턴 정가에는 거물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의 길티 플리(guilty plea) 후폭풍이 몰고 온 구린 돈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미국의 로비 업계는 아브라모프의 길티 플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 순간을 폭풍 전야의 고요함에 비유하고 있다. 평소 로비관행에 관대했던 미국 언론들도 이번 만큼은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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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미국 정·관계의 로비 실태를 추적, 취재해 그 치부를 낱낱이 밝혀내고 있는 탐사보도 전문기관인 cpi(cen ter for public integrity)는 지난해 4월 7일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로비업계에 대한 1년여의 취재 결과를 발표하고, 지속적인 ‘로비 워치(lobby watch)’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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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의 executive director 로버타 배스킨은 “우리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인 ‘로비 워치’는 워싱턴 로비업계의 어두운 단면을 들춰내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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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는 모두 25명의 취재 인력을 투입해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생산된 2백 20만 건의 각종 로비관련 공공기록을 입수해 분석했다. 결과는 예상을 초월했다. 워싱턴에 공식 등록된 로비스트만 만 4천여 명, 이 가운데 전직 의회 의원들이 250명, 백악관 관리 출신이 270여명, 연방정부 고위관료 출신이 2천여 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이른바 회전문(revolving door)을 통해 바로 직전의 동료들을 상대로 수천 건의 이권과 법안 심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8년부터 6년 간 로비자금으로 확인된 금액만 130억 달러인데, 2003년 24억 달러, 2004년은 30억 달러로 해마다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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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타 배스킨은 회견에서 미국 로비업계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무관심을 이렇게 빗댔다. “미국 로비업계가 벌어들이는 돈은 미국 30개 프로야구 구단의 전체 선수 연봉을 초과한다. 프로야구에 알렉스 로드리게스(미 프로야구 최고연봉 선수-필자 주)가 있다면 로비업계에는 잭 아브라모프가 있다. 그러나 정말 기이하게 우리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은 잘 알면서도 거물 로비스트가 벌어들이는 수백만 달러에 대해서는 모른다. 정보의 부족 때문이다. 록히드 마틴사는 8천 9백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쓰고 천 배가 넘는 940억 달러 군납 계약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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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 웹사이트에 올려진 ‘로비 워치’ db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주, 국가, 이슈, 기관, 산업별로 로비스트과 로빙 펌, 이권, 그리고 로비 금액을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다. 국가별 검색 기능에 들어가 남한을 쳐보면 우리 기업과 개인, 기관이 로비한 금액이 연도별로 상세히 나온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5백 8만 달러, 국가별 로비 랭킹 13위다. cpi가 한창 로비업계를 취재할 당시 cpi의 설립자 인 찰스 루이스는 워싱턴 사무실에서 만나 필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이번 뿐 아니라 의회관련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50만 달러의 예산과 36명의 취재인력을 투입해 1년 동안 천 2백 명을 인터뷰하고 수백만 건의 기록을 검토했다. 이 앞 광장 맞은 편에 있는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미국의 어느 언론기관도 우리처럼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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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 웹사이트를 방문해 그 동안 수행한 취재 프로젝트들을 보면 그의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위 대 테러 전쟁을 빌미로 한 군산복합체의 천문학적 돈벌이, 통신·방송업계와 fcc(연방방송통신위원회) 및 정치권의 검은 유착, 의약업계 비리, 대선 자금 추적, 기간산업 민영화에 숨겨진 이권 등 거의 모든 유형의 검은 돈 흐름을 감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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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루이스는 잘나가던 cbs < 60 minute > 프로듀서 자리를 때려치우고 cpi를 설립했다고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거의 30년 동안 나 자신이 뉴스 취재과정에 직접 몸담아 왔지만, 요즘처럼 미국의 상업언론이 권력에 아부하고 또 기업의 현안이 정치 현안과 일치하게 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는 내가 독립 언론인이거나 탐사 언론인이라면 주류 언론에서 일할 자리는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식 천민자본주의가 곪을 대로 곪아터지는 지금, 미국의 주류 언론에 환멸을 느낀 저널리스트들이 만든 cpi같은 탐사보도 기관이 그나마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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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의 탐사저널리스트 단체인 ire에서는 요즘 한창 2006년 제 1회 car 집체 세미나(boot camp)가 진행되고 있다. 오하이오 주에서 온 한 여성 언론인 지망생은 필자에게 자신이 방송전공이지만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는 네트워크나 케이블에 갈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공영방송 p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프론트 라인>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이런 젊은이들이 그나마 미국언론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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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 초기 우리 주류 언론들은 언론이 어찌 감히 과학을 검증하려 드느냐는 식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내세우며 스스로의 한계와 성역을 설정하는 작태를 보였다. 심지어 좌파 언론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삼성과 앞으로 먹여 살릴 황교수를 죽이려 한다고 매도하는 것을 보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언론이기를 포기한 이런 극우 사이비 집단들에게 포위된 우리 주류 언론계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자면 우리 방송계는 미국과는 달리 공영방송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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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권력에는 더 많은 이권을 노린 돈이 모이고, 검은 돈은 권력을 유혹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폐해는 당연히 대중에게 돌아온다. 우리 언론이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고 지키려 한다면 제 1의 사명은 그 유착관계를 감시하고 흐름의 급소를 차단하는데 복무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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