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어느 ‘386’의 ‘방송 장악’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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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느 ‘386’의 ‘방송 장악’ 고백
모든 권력은 방송부터 장악
누가 오늘의 자율 방송을 만들었는지 자문할 때
  • 손석춘 /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06.01.18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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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386’. 한국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시사용어’다. 30대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이다. 군부독재를 물리친 주역이었던 그 386들이 언제부터인가 헐값으로 매도되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에 들어간 386들이 제 구실을 못하면서 그 매도는 시나브로 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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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니다. 모든 386들이 실망과 배신을 남겨준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생활현장에서 ‘소금’으로 살아가는 386들이 적지 않다. 언젠가도 강조했지만 ‘아름다운 386’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 똬리 틀고 있는 부조리와 싸워가고 있다. 그 가운데 한 386이 방송에 대해 털어놓은 고백을 소개하고 싶다. 80년대 초반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생활인이다. 그는 ‘화염병 시위’에 나서고 그로인해 수배 당하던 시절에 텔레비전을 보았을 때를 잔잔하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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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로 쫓기면서도 조직 활동을 했던 시절이었지요. 9시 뉴스를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우린 그 때 kbs를 점거하자는 논의를 깊숙이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구체적 계획까지 짰었지요. 방송국을 점거해서 일주일만 우리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알리면 전두환 정권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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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한 386의 회고만이 아니다. 상식이 되었지만 모든 혁명이나 쿠데타의 선행 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방송 장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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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광주의 오월을 피로 물들이고 권력을 잡은 ‘신 군부’가 언죽번죽 ‘정의사회 구현’와 ‘복지국가 건설’을 구호로 내걸었던 1980년대를 톺아보아도 마찬가지다. 쿠데타 세력은 오월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방송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 결과였다. 방송사는 권력의 위선을 고발하기는커녕 권력의 위선을 권위로 포장했다. 권위를 부여한 권력의 논리를 널리 퍼뜨려갔다. 여북하면 ‘땡전뉴스’나 ‘또한뉴스’ 따위가 회자되었겠는가. 시청료거부운동이 광범위한 호응을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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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kbs를 점거해 일주일만 방송할 수 있으면 변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한 386의 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그 시기 방송을 통한 사회변혁의 꿈을 안고 방송사에 들어간 방송인들도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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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순한 회고를 위해 80년대 이야기를 ‘후일담’으로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80년대 방송 장악의 꿈을 털어놓은 386의 다음 말이 더 종요롭기 때문이다. 그는 1980년대와 오늘의 차이를 한숨으로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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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0년대 들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에게 설령 방송사를 주더라도, 한 달 동안 방송하라고 권한을 주더라도 말입니다. 무엇을 방송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방송할 내용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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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한탄은 아름다운 386만의 몫일까. 아니다. 방송인들 또한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2006년 1월 현재 우리 방송은 사실상 정치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아직도 방송사 사장 인선과 관련해 청와대의 개입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터이다. 하지만 적어도 방송 프로듀서들이 누리는 제작의 창의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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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그럽겠지만 짚고 가자. 제작의 창의성이나 자율성을 방송인 스스로 얻어낸 것은 아니다. 방송을 옥죄던 군부독재를 물리친 주체는 이 나라의 민중이었다. 방송노조의 활동 또한 그 전제에서 가능했다. 이는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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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냉철히 자문할 때다. 민중이 방송인에게 준 자율성을 방송인들은 과연 온전히 활용하고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386의 토로가 비단 그만의 개탄일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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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금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이나 정치판만이 아니다. 언론인들 또한 과연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때다. 그 질문이 겨누는 칼끝에서 필자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한 386 후배의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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