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평 - 스크린쿼터제,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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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 - 스크린쿼터제,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대 교수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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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유명 배우들이 기어이 길바닥에까지 나섰다. 지난 여름에 한차례 불거졌다가 가라앉은 스크린쿼터제 문제가 미국과의 통상조약 때문에 또다시 표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배우들과 영화 관계자들의 태도는 자못 비장하다.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우들이 자신의 사진에 검은 리본까지 두르고 시위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contsmark1|혹자는 예술의 자유경쟁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스크린쿼터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면 되지, 언제까지 예술을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보호해 주느냐는 것이 스크린쿼터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이다. 온실 속에서 한국영화를 자꾸 보호하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contsmark2|그러나 자유경쟁이란 어느 정도 여건이 비슷한 상황에서라야 의미가 있는 논리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경쟁이란 순전히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한국영화 제작 여건으로 보건대, 헐리웃의 엄청난 자본과 기술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영화는 다른 문화 장르들과는 달리 자본과 기술 의존도가 높은 장르이다. 제작 여건의 물적 토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통과 소비도 자본집약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돈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영화장르의 특성이다.
|contsmark3|스크린쿼터제는 열악한 한국영화의 제작 여건을 감안하면 반드시 지켜지지 않으면 안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그나마 그것이라도 없으면 어떤 결과가 올 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 같은 문화대국들도 스크린쿼터제를 사수하고 있다. 프랑스 정도로 세계적인 문화적 여건을 갖추고도 헐리웃과 일대일로 싸울 수 없을 정도로 미국영화의 힘은 괴물처럼 막강해진 상태이다. 미국영화는 마치 에일리언처럼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닥치는대로 남의 나라 영화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최소한의 예의도 망각한 뻔뻔스러운 괴물. 그 괴물이 먹고 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돈이다. 돈을 먹고 그 돈으로 또다시 돈을 긁어모을 괴물을 만든다. 그 괴물의 식욕은 끝이 없다. 그런 판에 ‘자유 경쟁’이란 허울뿐인 관념에 불과하다.영화인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그동안 그나마 영화인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10%대까지 내려갔던 한국영화 국내시장 점유율을 25%대까지 힘겹게 끌어올려놓은 판에, 정부가 경제논리를 앞세워서 또다시 도로아미타불을 만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열악한 제작 여건에도 불구하고 일취월장,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내었다. 젊은 영화인들이 속속 세계대회에서 수상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기타 분야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소중한 성취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 성취를 격려해주기는커녕, 앞장서서 판을 깨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contsmark4|스크린쿼터제 문제는 스크린쿼터제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영화는 단순한 예술 품목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숫자의 대중을 상대로 무차별로 퍼부어지는 일종의 문화적 수류탄 같은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달리 유난히 생의 리얼리티를 3차원적으로 복원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생생한 삶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 모든 것들, 등장인물의 말, 그가 입고 먹는 것, 생각하는 방식 등이 그대로 강력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대중의 모방 욕구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 모방 욕구는 상품 소비로 이어진다. 미국은 영화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파는 것이다. 외적 형태만이 영화일 뿐, 내적 내용은 또다른 종류의 제국주의이다. 정치적 제국주의보다 한결 더 음험하고 무서운 제국주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전선(戰線)이 무수히 교차되어 있는, 그물망처럼 촘촘히 조여들어오는, 소프트한, 치명적인 사이버 제국주의. 대중이 엄청나게 세련되어져서 그 그물 전선을 통과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바람이다. 문화, 특히 영화는 점점 더 일종의 정보 패닉 상태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판별하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에게 영화의 가짜 리얼리티에 저항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다. 어지간히 문화적으로 훈련되어 있지 않고는 실재와 허구 사이의 경계선을 그을 수 없는 것이 현대의 문화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적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스크린쿼터제는 말하자면 이러한 무차별 공격에 대항하는 문화적 수류탄의 안전핀 같은 것이다.굉장히 답답한 것은, 정부 당국자들이 ‘21세기는 문화 시대’ 운운하면서 말은 진수성찬으로 하면서 실제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감도 잡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21세기에 문화는 칼이며 힘이며 돈이다. 문화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당장 아쉬운 돈 몇 푼 얻자고 국가의 미래를 저당잡힐 것인가.
|contsmark5|※ 본 시평의 의견은 연합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ntsmar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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