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 MBC <다큐스페셜 - ‘생명’시리즈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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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 MBC <다큐스페셜 - ‘생명’시리즈 3부작>
장기이식, 그 부활의 아름다움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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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이강국mbc 편성실
|contsmark1|“육체는 단지 영혼의 임시저장고일 뿐입니다.” - jules broom(미국 장기기증자 가족)“그냥 보내기엔 너무 허무하잖아요. 이 아이의 일부라도 누군가의 생명 속에 살아있을 수 있다면…” - 박주홍 목사(장성 보생교회, 원희/10세의 아버지)이러한 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미담쯤으로 여기며 어디선가 들은 말 같다고 여길 그런 표현들이다. 그래선지 방송 당일까지만 해도 ‘이웅평 대령의 간 이식 결과’와 관련한 신문 사회면의 관심 외에는 시청자의 반응이나 기대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장기이식’은 대충 뭔지 아는 분야니까라는 식이다.그러나 ‘생명시리즈’ 3부작 중 첫 편으로 <이웅평의 사선(死線)에서(12/3 방송)> 가 방송되자 그 반응은 한편으론 고마울 정도로 컸으며, 다른 한편으론 뜻밖의 관심사가 여기저기서 쇄도했다. 분명히 ‘이대령은 바로 어제(12/2)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라는 자막과 함께 해설이 있었지만 모두들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결같이 물었다. ‘정말 이대령이 그 상태에서 살아날 수 있겠는가’라고.여기서 우린 우리가 알고 있는 ‘장기이식’, 더더욱 최근 몇 년간 급속히 발전한 면역학과 함께 ‘장기이식의 꽃’이라고 할 간이식수술의 사례와 실적에 대해서 그동안 그리 구체적으로 알 기회가 적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사실은 나 자신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작년 10월, 선천성 윌슨씨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던 서정대(15세, 울산시) 군을 병실에서 우연히 접하고 나서, 그리고 금년 8월10일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 이래 미국취재(10/29-11/4)를 마치기까지 줄곧 고민해왔던 것 역시 비슷한 문제였음을 고백한다. 더욱이 아직은 2편 <희생>과 3편 <승부>까지 방송되지 않은 시점에서 제작후기를 쓰고 있기에 ‘생명시리즈’ 3부작의 메시지가 제대로 된 ‘생명보고서’로 받아들여질지 가슴을 조이고 있다. 그러나 이젠 홀가분하게 옷을 벗고 애초에 품었던 나의 의문을 솔직히 털어 놓을 수 있어 좋다.먼저, ‘장기이식’은 ‘사랑의 릴레이’ 식의 신장이식 미담뉴스 정도로 인식해선 곤란하다. 사실은 심장과 폐, 간 등의 주요장기의 경우는 자격있는 이식센터의 수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엔 전국 60여곳의 병원이 버젓한(!) 장기이식센터로 난립하여 등록되어 있다.(작년에 뇌사법이 통과된 일본의 경우 단지 두 병원만 정부로부터 <뇌사센터>로 허가되어 있다!)특히, ‘뇌사자 간이식’이나 ‘생체부분 간이식’은 다만 마지막 기회로 쓰여지는 ‘선택적 치료의 한 방법’(treatment of choice)일 뿐, 누구에게나 생명연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 ‘성공률이 몇 퍼센트인가?’만 묻고 그것이 50%이건 80%이건 생존가능성만 믿고자 하며, 자신이 사망할 가능성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더욱이 전국의사들조차도 최근 10년간의 세계이식계의 동향과 업적에 대해서 무관심한 관계로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지 못하고 있고, 일부 병원들은 자신들이 가능한 장기의 적출에만 신경쓸 뿐, 타병원과의 연락을 통해 주요장기를 적출할 노력을 않는 부도덕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그러나 한결같이 내가 목격하고자 했고,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장기이식 분야에 대한 르뽀식 현장고발이 아니었다.그것은 애초부터 품었던 생각이며 끝까지 찾아내어 알리고 싶었던 이야기, 이를테면 점차 황폐화 하는 우리사회에서 ‘생명의 가치’와 ‘가치있는 생명’의 존엄성이 현대의학의 꽃이라고 일컫는 ‘장기이식’이라는 의료현장에서 올바로 보호받고 있는가 하는, ‘신생아병동 25시’이후로 품었던 한결같은 의문이었다.거의 1년여 내 나름대로의 ‘생명’이란 화두를 좇아 골몰하던 때, 서울 중앙병원 이승규 간이식팀장의 스탭인 이영주 닥터가 ‘이피디가 읽으면 크게 공감할 것이다’라며 자신이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건네주었다. 야나기다 구니오(柳田邦男)의 ‘내 아들이 꿈꾸는 세상’으로 기쿠치 간 문학상(菊池寬文學賞)을 수상한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첫줄부터 바로 내가 듣고 싶어하고 묻고 싶어하던 뇌사자와 가족의 고뇌에 대한 진실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이후로 크게 도움이 되었다.
|contsmark2|“…그곳(일본 말기의료학회)에는 장기 중심과 질환 중심에 치우친 나머지 치료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를 소홀히 하는 현대의료에, 환자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부활시키자는 숭고한 설립취지가 있었다.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을 때, 그 환자는 드디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환자에게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사랑의 따뜻함과 배려를 베푸는 정신적 풍토를 의료현장 전체에 퍼지게 할 수는 없을까하는 게 말기의료학회의 설립목적이었다. 삶과 더불어 죽음마저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의료는 황폐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내 아들이 꿈꾸는 세상’ 중에서‘심장사’와는 달리 ‘뇌사’는 그동안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었기에 이식의사건 장기기증자건 누구하나 확실하게 문제점과 현실을 털어놓지 않으려는 답답한 현실에서 이식계의 전모와 뇌사자 가족의 절절한 고뇌를 생생하게 접한다는 것은 그만큼 프로그램의 컨셉을 잡아가는데 가속도를 붙여준 계기가 되었다. 또, 이 책에서 서문처럼 인용된 다음과 같은 글은 줄곧 내게 큰 힘이 되었음을 밝히고 싶다.
|contsmark3|“우리의 평범한 하루하루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 그것이 어디에 사는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렇게 믿는 것에 의해서만 우리는 이 세상을 보다 가치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단 하나는 불모지대를 희망이라는 의지의 이름으로 바꾸어야 하는 일이다.” -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중에서“정확한 뇌사판정과 올바른 장기이식술이 행해져야 기증자의 숭고한 뜻이 제대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미국의 장기공여센터인 unos를 바쁜 틈을 내서 동행취재 해주신 이광수(한양대 일반외과)교수의 말이다. 이 외에도 많은 이식분야 의사들이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 ‘뇌사입법’이라는 법적 지원문제가 해결되어 마음의 부담은 덜었지만 그렇다고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늘어난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이렇듯 장기이식은 어느새 우리사회 생명윤리 수준의 척도가 되어가고 있다.
|contsmark4|12월11일 아침이면 내겐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전날까지 방송된 3부작 생명시리즈를 일상에서 깨끗이 털어버리고 또 다른 이야기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용기있는 출연자의 얼굴이다.제작기간 내내 달리 무어라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감사하게 느낀 것은 출연자중 어느 한 사람도 화면을 가리거나 가명을 쓰거나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프로그램의 취지를 믿어주었다는 사실이다.실제로 생체부분 간이식의 경우는 장기기증자와 수혜자가 부부간이거나 부모와 자식간에 이뤄지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워낙 장시간의 마취를 이겨내야 하고 또 치료기간 중에도 수없이 많은 주사와 약물을 이겨내야 하듯, 살고 죽는 것이 반반이고 보니 수술장에 웃고 들어서던 환자들의 모습과 빈 침대의 모습을 편집기간 내내 되돌려 볼 수밖에 없는 pd로서는 여간해선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의사들은 농담조로 날 가리켜 ‘반 의사가 다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솔직히 아직도 10세 뇌사자 박원희군(<희생>편)의 수술장에서 느꼈던 섬뜩함과 충격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수술전 나는 소년의 손과 발에서 누구보다도 따스한 온기를 느꼈었다. 그런 경우엔 소년의 신장을 받아 어렵게 새 생명을 찾은 앳띤 소녀의 밝은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결국 이식환자의 소생 측면 만이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뇌사자 역시 장기기증을 통해서 또다른 생명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토록 남들과 공감하고자 애썼나보다.그동안 졸작 ‘생명시리즈’를 보아주고 격려를 아낌없이 주신 시청자와 동료, 선배님들께 머리숙여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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