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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 ‘방송’대곡

|contsmark0|때가 때여서(?) 그런가. 도처에서 ‘방송 때리기’가 한창이다. 작금 지상파 방송을 향해 사회 각 세력들이 가하는 공세는 일제히 전진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기마부대를 연상하게 한다. 선정, 폭력, 시청률지상주의, 베끼기 프로그램, 속임수 편성, 모방범죄, 비과학적 미신 조장, 청소년 정서에 유해한 환경 조장… 최근 도마에 오르는 말을 모으면 우리 방송은 가히 파렴치한 범죄자가 아니면 범죄 교사(敎唆)의 집단으로 매도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방송의 선정 폭력성을 강도높게 비판한 김대통령의 발언이나 우리 방송을 두고 ‘막가파’라고 평했던 박지원 공보 수석의 말에서 방송에의 단죄는 거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일찍이 본 란에서 필자가 말했듯이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니 우리 방송의 행로를 돌이켜 보면 방송인의 입장에서는 그 표현이 거칠고 야속하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천학비재한 필자가 프로듀서연합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이러저러한 토론회를 나가는 일이 자주 있다. 시청률지상주의의 극복 방안, 옴부즈맨 프로그램 또는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관련, 외주제작 비율 의무화 관련, 청소년 대상 음악 프로그램의 문제점 관련 등등. 방송사나 현업자들이 이런 자리를 기피하기 때문인지 어떻게 하다 보면 현직 방송인으로는 필자가 유일하게 참석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되면 그 날의 토론회 분위기는 보나마나다. 여타 참석자들은 마치 필자가 방송사 대표라도 되는 양 앉혀 놓고 평소 방송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동네북을 두들긴다. 물론 논의중의 상당 부분은 프로듀서들에게 책임이 없지 않으니 들을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이크가 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을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다하곤 한다. 가령 구조를 두고 현상만 지적해서는 의미가 없다든지 ‘몸통’을 두고 ‘깃털’만 얘기해서는 소용이 없다든지 하는 논의가 그것이다. 그런데 변명도 반박도 한두번이지 매양 이런 노릇을 하다보면 그 누구엔가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방송인의 자존심과 전문성을 수호하려는 필자의 기도가 고작 자기합리화나 동종업계를 비호하는 온정주의로 받아들여지는 기미를 읽을 때 자못 비감해지는 것이다. 작금 이땅의 지상파 방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공공연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들의 질타는 지금까지 우리 방송이 자행한 그릇된 행태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하여튼 우리 방송은 공룡과 같은 거대한 몸집을 갖고 독립제작사에 횡포를 부리고 있으며 옴부즈맨 없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하면서 시청자에 대한 주인 대접을 우습게 하고 있다. 시청률 논리에 빠져 상업성으로 치달으면서 프로그램의 역기능에 대한 지적을 한사코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다양성도 추구하지 않아 우리 대중문화를 왜곡시키고 청소년의 정서를 오도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논의들의 집적은 곧 지상파 방송에 대한 견제 논리로 이어지는 것 같다. 외주비율의 의무적 확대, 만화영화 쿼터제, 시청자평가 프로그램의 법제화, 편성에 대한 규제의 강화와 과다한 처벌 조항 등등은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되니 법으로라도 강제해서 지상파 방송의 횡포를 막겠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는 방송사의 편성권이 침해되고 방송인의 자율성이 위축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독립제작사 활성화 방안’이 오히려 영상산업을 퇴보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운 털 박힌 방송이 싫어서인지 ‘아니라고 말하며 나서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방송사는 강자, 독립제작사는 약자라며 엄정한 분석을 뛰어너어 약자 편들기를 자처하고 나서는 이도 있다. 이 모두가 우리 방송의 자업자득이고 인과응보다. 지난 날 우리 방송은 정권의 나팔수와 서커스단 노릇을 하며 왜곡된 의제설정과 상징조작, 기만적 사회통합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복무했다. 그리고 정권의 우산 아래 안주하며 방송정책의 결정과정에서 한번도 당당하고 책임있는 소리를 내어 본적이 없었다. 그런 전력이 우리 방송에 멍에가 돼 있음을 뼈저리게 인정해야 한다. 나쁜 기억은 더 오래간다. 그동안 젊은 방송인을 중심으로 공정방송 좋은 방송을 위해 나름대로 투쟁해 왔지만 아직도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과거의 이즈러진 모습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고 그것이 방송인의 자율성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곰처럼 일하면서도 그 전문성과 자존심을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방송. 자신의 운명에 관한 논의마저 타율과 강제에 의해 좌우됐던 방송. 그 구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질서 아래서 얼마간의 당근에 순치돼 왔던 방송. 오늘 정녕 이 방송에 대해 크게 울고 싶은 심정이다. (시일야‘방송’대곡?)<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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