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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 낳고 나서 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촬영장이나 방송국 혹은 공연장에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 있다. “애는?” 그저 아이가 잘 크고 있냐거나 많이 컸겠다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 바로, 애는 어디다 두고 혼자 이렇게 일을 하러 돌아다니냐는 질문이었다. 반면 아이의 아빠인 내 남편은 아이 잘 크지? 하는 덕담만 들어봤을 뿐 단 한 번도 “아이는 어쩌고 이렇게 돌아다니지?”하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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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파트너는 출퇴근에 시달리는 직업도 아니고(영화감독이다.) 공동육아와 공동가사의 정신이 아주 투철한,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남자이기에 아일 낳을 때나 낳은 후의 남편의 노동력이나 마음씀에는 별 불만이 없다. 하지만 내 남편은 그런 ‘제대로 된’ 사고 방식을 가진 덕분에 회사에서 혹은 동료들로부터 그렇게 집안 일에 얽.매.여.서. 감독 일을 어디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며 걱정과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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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편 개인에게 불만이 없다고 해서 일과 가사와 육아를 동시에 하는 것이 수월치 만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집안 일과 바깥일의 비중을 똑같이 보고 있지만 나는 내 직장에서 집안 일 핑계 대는 게 ‘먹히’는 데 반해 남편은 그렇지 않아 생기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난 한 동네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아일 너무 잘 봐주시고 또 바로 옆에 있는 구립 어린이집엘 일찍부터 아일 맡겼기 때문에 이 땅의 다른 일하는 엄마들에 비하면 아주 호사스럽게 아일 키운 경우다. 그러니 남편이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직업에다 애 봐줄 친척도 없는 여자들은 육아라는 단어 뒤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붙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일하는 엄마들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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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에서 만나는 엄마들은 거의가 다 일하는 엄마들인데 그녀들 대부분이 일하는 엄마인 걸 굉장히 ‘죄송해’한다는 점이다. 아일 남에게 맡기는 것이 그저 ‘죄송해’서 항상 죄인입장인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걸 많이 봐왔다. 난 우리 아이가 분유를 먹을 때 제일 싼 분유를 먹이고 차라리 그 돈으로 내가 책을 한 권 더 사 봤고 지금도 내가 동료들과 회식이 있는 날이면 남편의 스케줄을 무리를 해서라도 줄이게 해서 아일 데려오게 한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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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 내가 낳았다고 해서 나만 죽어라 책임을 진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그렇게 여자들만 육아 전쟁의 전선에서 고생한다면 성도 내 성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고 만약 아이가 아들이라면 나중에 군대에도 보낼 필요가 없다. 국가가 아일 키우는데 무슨 도움을 줬다고 내가 내 아들을 국가 방위 사업에 3년을 고생시킨단 말인가. 태어나서 자랄 땐 국가와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다가 성인이 되면 군대도 가야하고 취직을 하면 평생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삥’을 뜯기게 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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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일하는 엄마들이여, 국가와 사회에게 애를 ‘함께’보자고 더 당당히 요구하자. 그리고 남편들이 지금보다 더 아일 함께 키우고 집안 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남편을 집으로 일찍 돌려보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자.(이 땅의 남편들이 일하는 시간이 줄면 국가 경쟁력이 후져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은 필요이상으로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게 문제이며 국가존립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남편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 시간에 집에서 아일 함께 키우는 것이 이 땅의 미래를 위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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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훈련소의 훈련병이 출산을 하는 아내 곁을 지키기 위해 3박4일 동안 ‘출산휴가’ 갔다왔다는 뉴스를 봤다. 그 뉴스의 제목은 ‘아름다운 출산휴가’였다. 아름다운 게 아니라 당연한 거여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도 그 아내가 청와대 인터넷 신문고에 민원을 낸 것이 ‘우연히’도 뽑혀서 그리 된 거라 하니 우는 애만 젖 주는 작금의 시스템이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생각에 몇 자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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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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