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따져보기] 정말 살아남기만 한다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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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따져보기] 정말 살아남기만 한다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나?
  • 관리자
  • 승인 2006.04.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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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한창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부르디외의 이론에 흥미를 느껴 이런저런 문헌들을 뒤적이다가, 조돈문 선생의 흥미로운 논문을 하나 읽게 되었다.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용은 계급 간 이동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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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논문들과 묶어 읽은 탓으로 어디까지가 조돈문 선생의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이들의 생각인지 분명하게 구별하기 힘들지만, 그 글에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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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계급에서 부르주아계급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90년 즉 3세대가 걸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3세대를 거치는 동안 자식이건 손자건 누구하나라도 삐끗한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하나 더, 이 논문은 imf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당연히 imf에 의해 더욱 골이 깊게 패인 빈부의 격차와 계급의 양극화 현상이 반영되지 않은 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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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기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비관적인 결론이 될지 모르지만, 없다. 물론 전혀는 아니겠지만, 분명히 없다. 물론 우리는 imf 직후의 벤처붐과 닷컴기업의 발흥으로 새로운 부르주아계급이 탄생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방법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건 ‘꾸준히 로또에 투자하시라’ 혹은 ‘판교에 청약하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확실한 방법은 지금은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4대가 됐건 5대가 됐건 꾸준히 노력하는 길 뿐이다. 물론 이 노력에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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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또 하나의 길이 보이는 듯도 하다. 어떠한 면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만큼 어려울 수 있고, 로또에 맞거나 판교에 당첨되는 것만큼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4대 5대를 지겹게 이끌어야 할 필요가 없고, 완전한 통제 불능의 재수에 떠맡겨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분명 그것은 또 하나의 기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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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슈퍼스타 서바이벌>은 선정적이다. 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무차별적이며 어설픈 모방이라는 혐의나, 남의 삶의 엿보기하는 관음적 쾌락에 기댈 수밖에 없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태생적 한계를 젖혀 두고서라도 그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신분상승이라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미끼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새로운 방식의 오디션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적이 그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좋아하는 일의 하기 위해서’ 혹은 ‘좋아하는 일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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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그렇게 매달려야 하는지를 단지 ‘좋아서’라고 대답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무책임한가. 이러한 과정의 끝에 있는 ‘슈퍼스타’라는 자리는 어쨌든 자기 삶에 전혀 다른 의미와 가치 그리고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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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들, 이를테면 특정 심사위원의 고압적이며 권위적인 태도나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접어두고서라도, 이 프로그램은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만든다. 그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노력과 분투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왜 하필 ‘슈퍼스타’여야 하느냐는 데에는 어떠한 이유로도 납득하기 힘든 상업 방송의 장삿속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이지만 비교육적이다’라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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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물론 그것이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이냐를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들의 전략이다. 이미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나는 그 힘의 실체는 어떠한 권위보다 절대적이며 막강하다. <슈퍼스타 서바이벌>은 이 힘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그것의 지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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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가 또다시 전 국민을 도박판으로 내몰고, 매국의 무리들이 외환은행을 미국의 투기자본에 상납하며, fta가 땀 흘려 쌓은 노력의 결실들을 제국의 힘으로 짓밟아 버리려 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슈퍼스타 서바이벌>은 우리를 더욱 맥 빠지게 만든다. 오락 프로그램은 단지 오락프로그램일 뿐이다. 하지만, ‘진정’ 즐거워야 오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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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서/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contsmark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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