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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보호를 위한 방송제작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한다
안상운
변호사, KBS 시청자위원

변화된 언론환경다사다난했던 98년이 저물어가고 있다.방송계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한 해다.지난 3월 MBC-TV 이 ‘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오는가’를 보도하면서 촉발된 매체상호간의 비판은 그후 9월초 KBS가 진통 끝에 <개혁리포트> ‘책임지지 않는 권력 언론, 누구를 위한 언론자유인가?’를 방영하고 이어 최장집 교수와 조선일보와의 소송과정에서 각 매체가 ‘언론동업자’로서의 틀을 어느 정도 깨고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그런데 이러한 언론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방송매체에 의한 인권침해 현상은 여전하고 이를 해소하려는 언론사의 노력도 그다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물론 KBS와 SBS가 각기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현업 일선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하지만 기망적이거나 위법한 취재방식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지난 6월 방영된 이른바 ‘수달’ 파문(KBS, 일요스페셜)과 관련하여 해당 방송사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은 것은 오히려 약과에 불과한 느낌이다.지난 1월초 서울고등법원은 몰래카메라를 사용한 방송프로그램(MBC-TV, 시사매거진 2580)에 대해 금 1천6백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는데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들의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의 대화장면을 그들의 동의 없이 촬영하고 그들의 모습 및 음성을 그대로 방송함으로써 이 사건 방송을 시청한 원고들의 주위사람들이 쉽게 원고들을 알아볼 수 있게 한 과실로 인하여 원고들의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및 초상권을 침해하였다.”고 밝혔다.방송사와 종교계와의 힘겨루기 양상으로까지 비화되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회장 김모 목사에 대한 ‘비리고발’ 프로그램(MBC, 시사매거진 2580)이 법원으로부터 방송에서 밝힌 비리사실이 진실이라고 입증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방영금지가처분 인용결정 및 반론보도 판결)당하였고, 또 유방확대수술의 위험성을 알리고 그로 인한 보상방법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방영된 프로그램(MBC, PD수첩)이 대법원에서도 인터뷰에 응한 사람의 신분노출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그의 사생활의 비밀을 무단 공개한 것이어서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았다.또 논픽션 라디오 드라마(MBC, 격동 30년)도 방송내용이 출처 자료의 진위를 충분히 확인 내지 조사활동을 하지 아니한 채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방송하였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패소판결을 선고받았다.불법적 취재에서 과학적 취재로이처럼 그동안 타성에 젖어온 방송프로그램의 취재·제작·편집 관행이 본격적으로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그동안 우리 방송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비열하고도 기망적인 취재기법을 종종 활용해왔다. 그것은 취재 과정을 전혀 모르는 시청자들을 충격적인 장면으로 사로잡는다는 매력 때문에 ‘숨은 양심’을 찾기 위한다거나 사회의 어두운 비리를 고발한다는 숭고한 목적을 내세워 뉴스 프로그램이든 오락 프로그램이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써왔던 것이다.이제 무단촬영이나 비밀촬영(이른바 몰래카메라의 방식)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초상권의 침해는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하지만 만약 경찰이 과속운전을 단속하기 위해 함정수사를 한다면 누구나 비난하듯이 공익성을 강조하는 방송이 아무리 ‘정의의 횃불’을 들기 위해서라고 해도 스스로 범법을 저지르는 것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그런데 방송계 일각에서는 특히 부정과 비리를 캐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몰래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없다면서 만약 모든 경우에 몰래카메라의 사용을 금지한다면 이는 방송의 환경감시적 기능을 포기한 것이고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여서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알 권리’는 언론의 모든 불법과 부정을 감싸주는 면죄부가 아니다. 또한 방송의 환경감시적 기능도, 마치 경찰이 고문이나 자백에 의존하는 전근대적인 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수사를 통하여 진실을 밝혀야 하듯이, 방송도 불법적인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취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최근 국민일보 기자가 검사실에 들어가 수사자료를 프린트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을 둘러싸고 기자가 구속된 데 대하여 언론계와 검찰간에 마찰을 빚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이나 윤리와의 관계에 대하여 새삼스레 관심을 일깨워 주었다.언론의 자유와 책임언론자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언론의 책임도 중요하다.과거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을 때는 언론의 ‘책임’보다는 언론의 ‘자유’를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탈권위주의적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다음에는 국민들은 언론에 대하여도 그 ‘자유’뿐만 아니라 ‘책임’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취재보도에 있어 이른바 성역을 인정하거나 언론의 과오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다. 또 언론도 불법적인 취재행위를 무작정 관행이라고만 내세울 수도 없고, 언론의 자유이니 이해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더욱이 언론산업의 독과점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무한경쟁상태를 맞이한 언론은 공익적이고 공정한 보도보다는 선정적이고 공격적인 보도로 나가는 경향이 있으나 국민들은 잘못된 언론의 보도에 대하여 더 이상 관대하지 않다.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과거의 잘못된 취재보도의 행태를 개선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취재과정에서의 사생활 침해, 무단촬영, 초상권 침해, 허가 없는 문서반출, 신분사칭, 강제인터뷰, 함정취재, 속임수부탁, 도청 등이 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는데도 우리 언론은 취재보도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나 적법절차의 준수보다는 경쟁의식에 따른 특종의식, 낙종방지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보도를 위해서는 법과 윤리의 한계를 벗어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니냐는 식이다.언론사나 일선 PD들은 힘들여 취재하여 보도하는데 보도와 관련된 당사자들이 걸핏하면 명예훼손이다,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제소해 와 언론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취재환경이 매우 취약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또 법원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언론환경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언론을 옥죄려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국민들이 언론을 바라보는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또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자들의 인권수호 의식은 더 이상 언론에 대하여 침묵하지 않으며 또 법원도 언론의 잘못된 취재보도의 관행에 대하여 묵과하지 않고 있다.이제 언론에 대하여도 법치주의가, 법의 지배의 원칙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법원이 언론에 대하여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도 우리 언론이 과거의 관행과 타성에 젖어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수용·대처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의한 제재에 앞서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방송사와 PD가 모두 사는 길각 방송사마다 방송의 공영성과 공익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말로만 강조한다고 해서, 또는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제작한다고 해서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또 그것은 제작일선에서 일하는 PD의 한사람의 문제라고만 볼 수도 없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PD나 기자들도 시청률과 잘못된 취재·제작시스템의 희생자다. 여기에서 잘못된 취재·제작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것은 방송사와 PD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사는 길이다.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방송사와 한국방송협회 그리고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방송유관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지혜를 모을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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