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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과 행복한 휴일
배인수
전 EBS PD / 미국 유학중
fullshot@hanmail.net

|contsmark0|미국의 방송은 다양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큰 사건이 생기면 온 방송이 다 한 곳에 몰리는 것과는 달리 웬만해서는 특집편성 같은 것은 잘 하지 않습니다. 설사 한 쪽에서 특집으로 뉴스시간을 늘려가며 홍수보도를 해도 다른 채널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저녁을 다 바쳐 축구중계를 합니다. 무언가 압도적인 그런 화제는 잘 없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완전히 한 곳에 몰리는 그런 일은 이 곳에서는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릅니다.물론 뉴스가 없는 수많은 채널들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3대 네트워크는 한 군데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바로 대통령 탄핵에 관한 문제입니다. 저로서는 미국에 와서 처음 겪는 일입니다. 화제가 집중된다는 것이 말이죠. 며칠 전에는 이라크 공습이 부상했지만 대통령 탄핵만큼 큰 이슈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공습마저도 탄핵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기상 탄핵투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죠. 하기사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죠. 미국 역사상 두 번째인가 그렇다는데 사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크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 모습입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는데 호들갑을 좀 떤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세상일은 세상일대로 한편에서 또 나름대로 굴러가고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 세상일 가운데 또 미국을 뒤덮고 있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바로 겨울 휴가철에 관한 것입니다. 요즘 미국방송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impeachment’와 더불어 ‘happy holiday’입니다. ‘탄핵’과 ‘즐거운 명절’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말이 이즈음 미국의 화두입니다. 제 느낌으로는 어쩌면 탄핵보다 더 압도적인 주제가 ‘행복한 명절’입니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저는 ‘메리크리스마스’와 ‘해피 뉴이어’밖에 몰랐는데 막상 미국에서는 그 말은 한번도 못 들었습니다. 모든 게 ‘해피 할러데이’로 통합니다. 이 곳의 연말 분위기는 저로서는 좀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바람이 붑니다. 12월 초부터 슬슬 연말선물 광고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요즈음은 입만 열면 ‘해피 할러데이’입니다. 불우이웃 돕기 같은 공익광고도 연말 분위기에 한 몫하면서 정말이지 온통이라는 말이 그럴 수 없이 잘 들어맞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관심도 사실은 온통 연말 휴일에 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대통령이 탄핵되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니다, 이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탄핵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니다 뭐 이런 식인 것 같습니다. 하긴 이 나라는 전쟁 중에도 프로야구는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 편에서는 100여년 만에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데 연말분위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그런 나라가 조금 낯설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제가 나중에 조국에 돌아가면 혹시 조국이 더 낯설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혹시나 몇 년 뒤 한국에서 저를 만나서 제가 말끝마다 ‘미국에서는 말야’ 하고 침을 튀기거든 저 좀 말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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