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총력 월드컵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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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난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니 요즘 같은 ‘총력 월드컵 정국’에서는 매국노라도 된 듯한, 다소 비장한 느낌까지 들지만, 그리 대단한 깨달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당이 싫다고 절규했다는 어느 소년처럼, 당당하지도 못하다. 그저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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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해서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보거나, 아파트 이웃집 아줌마들이 반상회에서 1202호 남자의 흉을 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정말 아닐까?). 딸아이의 학교 선생님이 그 문제로 아이를 야단치지도 않고, 장모님이 자네는 어떻게 된 사람이 그렇게 축구에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 혀를 차지도, 물론 않으신다. 불편한 것이라고는 그저, 텔레비전에 축구 말고 다른 것은 보이질 않는다는 정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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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축구팀의 골키퍼였다는 전직 대통령 때문에, 이 스포츠에 대한 인상이 대단히 좋지 않았던 기억은 있다. 대통령의 이름을 딴 ‘박스컵’이라는 국제 축구대회가 사실은 상당히 이례적인 작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적도 있다. 군대에 가서도 축구(이른바 전투축구!)하는 시간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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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보다는 덜하지만, 즐거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건 우리 tv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그나마 그 tv마저도, 너무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월드컵 4강을 이룬 나라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 또는 온 국민이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잔치인데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을 해 보려고도 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데 방송사가 뭘 어쩌겠나, 엄청난 중계료를 생각하면 월드컵 ‘도배’는 당연하다, 이런 이야기도 들린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이 어떻고 월드컵 ‘올 인’이 뭐가 문제고, 이런 이야기는 그저 가볍게, 환호에 이미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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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마치 선진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이라도 된 것처럼,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 했던 나도, 사실 요즘은 월드컵 중계를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축구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했다고 할 수도 없고 인류의 화합이 축구공 하나를 통해 이뤄지는 놀라운 드라마에 매료됐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은, 그저 분위기에 휩쓸리는 가여운 인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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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도 깜짝 놀라기도 했다. 지금의 ‘월드컵 총단결’을 보면서, ‘온 국민’이니 일치니 총화니 하는 과거 정권의 수사까지 떠오르는 것은 정말,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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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총단결 정국을 지켜보면서 갖게 되는 이런 불편함은, 어쩌면 방송쟁이로서 경쟁사에 대해 품게 되는 적의나 질투 같은 것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온통 월드컵에 ‘미쳐’돌아가는데 우리 채널만은 고고하게, 월드컵과는 아무 상관없는, 점잖은 방송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률은 또, 얼마나 떨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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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없는 무공해 채널, 같은 구호라도 내걸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월드컵뿐 아니라 시청자도, 광고도 없는 방송이 될까봐 집어치웠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우린 정말 지나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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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cbs tv본부 편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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