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독일에 간 텔레비전 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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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일에 간 텔레비전 오락
  • 관리자
  • 승인 2006.06.2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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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월드컵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석연찮은 판정이 있었고,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쨌든 지난 보름 즐거웠고, 우리 대표팀 선수들 역시 훌륭히 경기를 치러냈다. 항상 100%이상을 요구하는 팬들의 성화가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어쨌든 120%이상 잘 해주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없었다. 적어도 올해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뛰는 시합을 보게 될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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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은 사실 많은 것을 희생하는 가운데 치러졌다. fta 협상, 외환은행 불법매각,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학교급식 식중독 사건과 같은 메가톤급 이슈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지만, 이것들은 ‘월드컵 뉴스’와 구분되는 ‘일반 뉴스’로 취급될 뿐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16강 위업에 찬물을 끼얹는 반민족주의자로 몰리거나, 목이 터져라 외치는 ‘대한민국’의 함성과 ‘투혼’을 불사르는 새벽의 열기에 파묻혀 그 존재조차 드러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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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의 경기는 말할 것도 없고, 대략 이슈가 될 만한 경기라면, 지상파 3개 채널이 거의 예외 없이 생중계를 했다. 2개의 공영방송과 1개의 상업방송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나라 방송 체제를 생각한다면, 이는 더 이상 점잖은 말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한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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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일간 신문들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어느덧 스포츠 찌라시가 되어 버렸으니, 방송만을 탓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비난과 비판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건 텔레비전 오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긴 오락이야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이 본업이니, ‘월드컵’과 같은 대목을 놓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텔레비전 오락에 있어, 이만큼 훌륭한 소재가 또 있겠는가? 대통령 선거에도 뛰어드는 판에 어차피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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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들이 독일로 달려갔다. 독일 월드컵을 소재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자체를 아예 월드컵이 열리는 물리적 공간으로 이동해 버렸다. 물론 독일에 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를 두고 외화 낭비니, 위화감 조성이니 말한다면, 어쩌면 촌스럽고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니, 관두자. 어쩌면 독일에 간 텔레비전 오락도 나름대로 문화적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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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고성 앞에서 치러지는 유치한 게임들은, 잘 정돈된 엘리트들의 모던한 감수성에 저항하는 대중의 키치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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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재미를 본 ‘이경규가 간다’식의 포맷은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한국형 오락 프로그램의 전형을 세워 새로운 방송장르의 탄생을 예고한다. 더구나 그 뻔뻔스러움은 자신감과 저항하는 주체의 형성을 반증하고 있으니, 드디어 텔레비전 오락이 문화적 자의식과 미학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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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텔레비전 오락은 그것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 방송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그리고 그 전체적 배치와 관계들 속에서 그것의 의미는 결정된다. 어쩌면 월드컵 기간 동안에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창구효과’가 다만 서로 다른 미디어들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월드컵이라는 콘텐츠는 스포츠에서 시작해서, 뉴스, 시사토크, 시사/교양, 버라이어티, 다큐멘터리,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 모양새를 바꿔가며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경제적 이득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텔레비전 오락은 그 가운데 하나, 그것들 가운데 가장 뻔뻔스러울 수 있는 창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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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mbc <무한도전>의 6월 24일 방송분의 ‘물공헤딩’은 참으로 위험해 보였다. ‘물공’ 이벤트의 성공에 탄력을 받은 탓인지, 이날 사용된 축구공에는 물이 아니라, ‘모래’가 채워져 있었다. 아마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 하거나 긴장을 풀어 버린다면,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었을 것이다. 즐거움이란 대개는 경계 안의 안이함이 아니라, 그것을 벗어나 경계 밖의 일탈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탈이 어떤 범위를 벗어나게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가벼운 즐거움일 수 없다. 일탈과 벗어남의 즐거움이라도 적어도 위협적이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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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서/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contsmark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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