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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몫 해내는 PD로 기억되고 싶다”

[인터뷰] 장애인 뮤지컬·영화 준비하는 김영진 KBS 드라마1팀 PD 관리자l승인2006.07.05 16: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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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2000년 교통사고 뒤 식물인간→ 하반신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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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현재 지팡이 없이 700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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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의 어느 날, 휴가를 맞아 미국을 방문한 김영진(47) pd는 가족들과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6명이 타고 있던 자동차가 갑자기 뒤집혔다. 당시 김 pd는 뒷좌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4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그동안 그는 식물인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내에선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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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2년 9월 회사에 복귀했다. 혹독한 재활 훈련 끝에 지난해 봄 휠체어에서 일어섰으며 요즘은 출퇴근을 혼자 할 정도로 호전됐다. 그가 운전을 하자 동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정작 본인은 운전보다 걷는 게 훨씬 힘들다. “700걸음 정도는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다”며 그는 빙긋 웃었다. “이런 속도로 간다면 올 연말엔 지팡이가 더 이상 필요 없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도 한다. 6월30일 여의도 kbs 별관에서 만난 그는 지팡이 없이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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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통사고는 자동차의 기계결함으로 일어난 것으로 확신 한다”며 “현재 포드사와 렌트 회사 등을 상대로 사고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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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 연출로 재기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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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 pd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뮤지컬과 영화 연출 계획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내년 4월 선보일 뮤지컬 ‘위드 러브’(with love)와 올 연말부터 촬영 예정인 장애인 시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영화가 그것. 영화의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시나리오는 거의 완성 단계다. 뮤지컬의 대본 작가는 정하연, 작곡은 김희갑씨가 맡는다. 성공한 연극배우가 교통 사고로 장애인이 된 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을 예정. 성우 권희덕씨의 권유로 연출자로 나섰지만 그는 내심 영화에 더 욕심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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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재 씨가 운영하는 싸이더스 f&h가 제작을 맡은 이 영화는 장애인 요양시설인 ‘초원의 집’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휴먼 스토리이다. ‘발차기의 달인’이었던 옛 조직폭력배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다.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의 월급이 지급되지만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은 “할 일이 없다”는 것. 일거리를 찾는 그에게 조직은 한 마을의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장애인 시설’을 폐쇄시키라는 임무를 내린다. 시설에 잠입한 그는 시설을 폐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그는 장애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폐쇄쪽 입장에서 수호쪽 입장으로 바뀌어 폐쇄하려는 측에 맞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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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문제에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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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의 꿈은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도를 한다. 재활은 오히려 그 다음 순서다. “사람들에게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내가 pd로서 한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란 인식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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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심정을 잘 아니까, 내가 하면 솔직한 심정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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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pd는 장애인에게 가장 큰 고통은 “일거리가 없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업무에 복귀한지 4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그는 “일 다운 일을 해보지 못했다”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그는 드라마팀에서 fd와 스크립터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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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한다. 일하다가 다칠까봐 선배들은 내 눈치를 본다고 겉으로 말하지만, 과연 일을 제대로 해낼까란 의구심이 더 강한 것 같다. 난 일을 하고 싶고 잘 해낼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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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걷기 훈련도, 직장에 거르지 않고 나오는 이유도 모두 pd로서 일하고 싶은 의지 때문이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시각 장애인들에게만 허가했던 안마사 자격증 취득을 위헌으로 판결한 것은 비장애인들의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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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시각 장애인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없다.” 김 pd는 “대통령 가족 가운데 장애인이 있어야 우리나라 장애인 인권이 개선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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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되기 위해 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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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김 pd의 꿈은 음악가였다.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를 했고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다. 그가 pd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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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생들이 tv에 직접 출연하는 <우리들 세계>가 꽤 인기를 끌었는데,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일주일간 촬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는 현재 sbs 사장인 안국정 씨였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pd로 진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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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뒤 그는 오리콤의 카피라이터, 한국일보 기자 등으로 활동했지만 kbs 입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직장생활 틈틈이 입사를 준비해 87년 마침내 세 번째 도전끝에 합격했다. 유년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안국정씨도 방송국에서 만났다. 하지만 그를 만났을 때 김 pd는 정작 아무 말도 못했다. “아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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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뒤 라디오 pd를 거쳐 수퍼 탤런트 선발 과정 등을 지휘했다. 93년 꿈에 그리던 드라마 첫 연출을 맡았다. 조재현, 하희라 주연의 <아빠는 조감독>이란 단막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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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 창피하다. 많이 어설펐다. 50살에 같은 내용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 드라마에는 삶을 보는 pd의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격이 성숙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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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작대기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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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pd의 가족은 부인을 비롯해 세 명의 자식이 미국에 있다. 기술의 발달로 화상 채팅이 가능해 매일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그는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새벽에 들어가 옷만 갈아입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는 늘 촬영 현장에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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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첫애가 유치원생일 때였다.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에게 부모님 얼굴을 그려오라고 했는데, 엄마 얼굴은 제대로 그린 반면 아빠 란에는 작대기 3개만 그어져 있어 가정에 문제가 있는 집안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이는 ‘아빠 얼굴을 볼 수 없었으니까 그랬지’라며 지금도 나를 나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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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는 일 욕심을 부렸다.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는 지금 나는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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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임현선 기자·사진=정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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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pd가 연출한 드라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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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전설> 시청률 50%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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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pd는 <아빠는 조감독>(93년)에 이어 단막극 <아주 특별한 하루>(97년)를 연출했다. <원지동 블루스>(97년)는 그가 연출한 첫 일일연속극이다. 이순재, 사미자, 강남길, 정애리 등 그 당시 잘나가던 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였지만 시청률 부진으로 계획보다 일찍 막을 내렸다. 박상민, 성현아가 주연으로 나온 미니시리즈 <열애>(97년)도 그의 연출작품. 첫 시작을 멋있게 하자는 욕심에 폭력장면을 넣었는데 방송위원회에 불려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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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절정기는 98년 주말드라마 <야망의 전설>을 만들 때 찾아왔다. 영화 <실미도>(2003년)와 비슷한 내용의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50.7%까지 올라갔다. 최수종, 유동근, 채시라, 염정아 등이 등장했다. 그러나 김 pd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설날 특집으로 만든 <아름다운 비밀>(99년)이다. 따뜻한 가족애를 그렸다. 최수종, 나문희가 주인공을 맡았다. 이후 주말드라마 <사랑하세요>(2000)를 연출했다. 최수종, 김민종, 이승연, 추상미가 출연했다. 김 pd는 자신의 강점으로 캐스팅 능력을 꼽았다. 배우들과 사이가 좋다. 그는 “배우들에게 칭찬을 잘 하는 편”이라며 “진심으로 대하면 진심이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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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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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서 걷기까지 장애는 신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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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에서 일어나 걷기’까지 지난 6년간 김영진 pd의 삶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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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픈 뒤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매사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심도 깊어졌다. 사고 현장에 가족이 함께 있었지만 다친 사람은 유일하게 김 pd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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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한 걸음 걸었던 내가 두 걸음을 걷게 됐을 때 인생 최고의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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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까지 치료비로 10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지금도 간병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걷기 위해 기 치료를 받는 동안 4000만 원을 썼다. 급여일만 되면 카드 결제할 금액이 많아서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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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속이고 싶지 않다. 걷고자 하는 재활 노력은 내가 살겠다는 욕구의 발현일 뿐이다. 사실 돈을 아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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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속에 나오는 주인공 조르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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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는 대지와 탯줄이 끊기지 않은 사람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그렇게 살다가고 싶다. 몸이 좀 나으면 소설의 무대가 된 크레타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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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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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선 기자|contsmark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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