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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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회 신임 전북지부장 KBS전주 김정기 PD
합격 14개월만에 발령 받은 CBS 구범준 수습PD
  • 승인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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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지역 정체성 확보하는 프로그램 공동제작 추진할 것” 연합회 신임 전북지부장 kbs전주 김정기 pd
|contsmark1|“돌았어.”tv 주조 옆 복도까지 들린 생소하다 못해 당황스럽기까지 한 단어.“돌았어?” 어리둥절해 하는 pd 초년생에게 나타난 그의 모습은 덩치는 곰, 어리숙한 얼굴에 크고 둥근 얼굴, 게다가 방송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웃고, 떠들고, 중얼거리고 변하지 않는 건 그의 눈빛 뿐….방송에 대한 열정과 사랑,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하는 추진력, 그리고 사람을 생각하는 건강한 pd정신, 그는 그렇게 다가왔다.
|contsmark2|촌놈 김정기“촌놈이네.”그를 보는 사람 ‘열이면 열’ 처음으로 뱉는 말이다. 그렇다. 그는 촌놈이다. 전북 부안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줄포 촌놈이다. 새카만 얼굴, 투박하면서 거친 사투리, 그에게서 풍기는 소주 냄새. 그런 소주 냄새 때문인지 그에게는 고향 냄새가 난다.“코미디든지 영화든지, 작품의 근간은 고향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pd연합회 전북지부장이 된 것도 프로듀서들이 고향의 맛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그래서인지 그는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남원 도공들의 애환을 담은 <정유재란 그후 400년>, 전북의 얼을 찾은 <다큐멘터리 동학농민혁명> 등 그의 손길을 거쳐간 프로그램 속에는 바로 전북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어려운 일인 줄은 알지만, 각각의 방송사들이 주체가 되어 하나의 주제를 설정해서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각 방송사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 이처럼 뜻깊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시시콜콜하게 지역 프로듀서들의 역할과 책임론을 강조하는 그는 술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어떤 때는 큰형처럼 혹은 막내처럼, 쉽게 웃고 떠들기도 하지만 잘못된 일에는 분노할 줄 아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방송환경이 대내외적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지역방송국은 많은 것에 소외되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프로듀서들은 그 시선을 이웃으로 돌려야 합니다. 프로듀서정신, 그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강한 사람들을 발굴, 프로그램화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임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그런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그는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프로듀서들이 만들어야 하는 세계가 있으며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프로듀서들은 무엇보다도 개개인에 묻히지 않아야 합니다. 동일한 직업의식 속에서 함께 어깨를 맞잡고 나아갈 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손성배kbs전주방송총국 편성제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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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접어두었던 날개를 펴고합격 14개월만에 발령 받은 cbs 구범준 수습pd
|contsmark10|만나기로 했던 구범준 수습pd가 다른 한 명과 같이 나왔다. 지원사격(?)을 해줄 입사동기 차양명 수습pd다. pd지원 신입사원은 모두 이 두 명인데, 그 둘은 인터뷰 내내 서로 장단을 맞추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곤 했다. 올 1월 4일자 수습발령이면 얼굴 익히기에도 짧은 시간이었을 테지만 이들의 친분은 벌써 상당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일년 남짓 함께 고생을 함께 한 동지이기 때문이다.이들은 지난 97년 11월, 21기 공채시험을 치르고 98년 2월말까지 교육도 받은 처지였으나, ‘그 놈의’ imf덕에 작년 9월로, 다시 올 1월로 발령날짜가 일년 정도 늦추어졌었다. 그 과정에서 쌓은 우정이었으니 오죽 하겠는가. 단지 같은 처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동안 시험에 합격한 9명은 발령이 연기된 후 스스로 cbs 프로그램을 모니터 하여 회사에 매주 제출하는 성의를 보여왔다. 다시 발령이 1월로 연기되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모니터를 제출하는 노력으로 pd연합회보(98년 10월 1일자 151호)에 실리기도 했다. 구범준 씨는 그 당시 홈페이지 기획을 맡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뒤에 그런 활동에 감동 받은 모선배가 금일봉을 하사해 그간의 노고를 달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잊지 말아달라’는 몸부림이었죠. 사실 그런 작업만으로 보내기엔 너무 고달픈 시간이었어요. 그나마 전 선배 소개로 조그만 게임소프트웨어회사에서 일했었는데, 다른 동기들은 접시 닦기나 신문을 돌리는 등 몸으로 때우는 일들을 많이 했죠.”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모두 9명의 입사동기 중에서 2명은 지역민방 등으로 진로를 옮긴 상태이고 현재는 7명만 수습교육을 받고 있다.이렇게 새롭게 시작하는 한 명의 ‘방송쟁이’에게 pd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방송이라는 것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매체에 담길 내용을 만들고 구성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pd일 겁니다. 현대사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직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앞으로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된다면, 그걸 위한 pd라는 직업이 나의 지향점과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속에서의 pd에 대한 상이라 추상적이지만 내가 선호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이 pd라고 여긴 거죠.”구범준 씨는 앞으로 각 프로그램들을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수습교육을 받게된다.“라디오 방송사에 들어오면서 소리로 전달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봤습니다. 시사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모든 프로에서 잘하고 싶어요.”새로 시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싱그럽다. 그들의 눈빛에 희망이 묻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방송계의 기둥으로 서주길 바란다. <이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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