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응원이 FTA투쟁으로 바뀌는 즐거운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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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응원이 FTA투쟁으로 바뀌는 즐거운 상상
  • 관리자
  • 승인 2006.07.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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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드디어, 지난 13일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언론노조 총파업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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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본부와 국회를 오가며 3개 본부와 105개 지부 21개 분회 언론노조 산하 사업장 모두가 참가했다. 총인원 3000여 명. 현업에서 단 한 시간이라도 손을 놓고 있기 어려운 우리 일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3000명은 대단한 인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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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태풍과 호우 등 국가적 재난으로 11일에 예정되어 있던 총파업 일정이 연기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3000명은 단순한 숫자 3000의 느낌만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정예병을 엄선해 놓은 느낌이라고 하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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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느낌일지 몰라도 우리 민족이 지금껏 감내해 온 그 어떤 국난보다 무서운 대재앙의 서막이 바로 fta라 생각한다. 그 자리에 어쩌지 못할 현업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것만이 천추의 한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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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근무하는 강원지역의 민영방송인 강원민방에서도 30여명 가까운 조합원 동지들이 참석했다. 이틀 밤을 꼬박 새고서도 앞장 서 달려간 동지도 있고, 한 달에 몇 번 돌아오지도 않는 휴일에 사랑하는 아내와의 단란한 약속을 깨고서도 즐거이 투쟁에 동참한 미담을 만들어 준 동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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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만 수천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장을 생각하면 극히 미미한 규모겠지만, 우리와 같은 지역방송에서 30여명이면 전체 조합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대단한 인원이다. 또한 지역방송에서 조합원 3분의 1이상이 현업을 놓고 상경투쟁에 나설 만큼 위급한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벌어지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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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국회를 오가며 벌인 투쟁을 끝내고 춘천으로 돌아온 그 멋진 동지들과 정겹게 술 한 잔 기울였다. 이구동성으로 한미 fta의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그 빌어먹을 네거티브 방식대로 미디어산업 부문이 진행될 경우 가장 먼저 피 흘리며 쓰러질 노동자가 바로 우리 같은 지역방송인임을 절절히 깨달았다고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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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사가 fta는 “fucking the america!”라고 피를 토하는 듯 외쳤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필자도 현장에 있던 것처럼 즐거우면서도 무언가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철렁하는 느낌에 혼란스러웠다. 역시 누가 뭐래도 투쟁은 최고의 학습이며 놀이며 무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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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동안 기다린 6월은 가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던 fta와 함께 7월이 왔다. 지난 6월 대표팀의 뜨거운 ‘투혼’이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고 우리에게 가슴 따뜻한 드라마와 함께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지독한 내셔널리즘에 대한 경계를 일깨워 주었다면, 우리 언론 노동자에게 필요한 ‘투혼’은 어떤 모습일까? 국민재앙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 언론노동자가 발휘해야 할 ‘투혼’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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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의 한미 fta 저지 총파업은 단 하루 동안이었다. 파업이라는 극한의 투쟁수단이 방송에서 실제 효과를 얻으려면 최소 2주 이상의 투쟁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노동자의 총파업은 그 자체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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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에 참여한 우리 언론노동자들은 한미 fta 관련 프로그램을 취재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fta가 우리조차 몰랐던 끔찍한 재앙의 전주곡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거리에 나서게 된 진실된 정보의 전달자이자 국민재앙을 막기 위한 투쟁의 적극적 주체가 우리 언론노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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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투혼’과 총파업이라는 극적인 ‘투쟁’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투혼’의 사전적 정의야 말로 ‘끝까지 투쟁하려는 기백’이다. fta 저지를 위해 마지막 숨까지 내어놓으려는 우리의 투쟁이 월드컵의 열정을 넘어 우리가 발휘해야 하는 투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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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동지들의 무용담을 듣던 중에 “kbs를 장식하고 있던 월드컵 현수막이 내려지고 바로 그 자리에 ‘저지 한미 fta’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한 즐거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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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투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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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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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민방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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