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진짜 ‘땀’의 숭고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BS <생활의 달인>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적 가치 발견

|contsmark0|영국의 방송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민영방송 itv가 가져온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itv가 등장하기 전, 영국 방송 저널리즘의 역사는 bbc 저널리즘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bbc는 공영방송의 경계 내에서 방송 저널리즘을 발전시켜왔다. 영국 의회정치의 정치적 특수성-계급에 기반한 정당 분화-은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을 방송 저널리즘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만들었다. 공식적인 정보원은 뉴스 생산의 주요한 원천이었다.
|contsmark1|
|contsmark2|
그러나 itv의 등장과 함께 영국 방송 저널리즘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민영방송 itv는 보다 대중적인 뉴스 생산을 지향했다. 이에 따라 뉴스 생산의 원천도 공식적 정보원(고위 관료, 국회의원 등)에서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대되었다. 거리 인터뷰는 itv가 도입한 대표적 뉴스 생산 방식이었다. 초기 bbc는 일반 시민으로부터 얻은 인터뷰가 뉴스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이후 itv가 사용한 거리 인터뷰 방식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itv로 인해 방송 저널리즘은 보다 시민사회와 가까워지게 되고 다양한 여론의 경연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되었다.
|contsmark3|
|contsmark4|
itv가 거리 인터뷰를 주요한 뉴스 생산 방식으로 채택하여 뉴스의 민주화와 다양화를 가져온 것은 비단 방송 저널리즘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도 이는 동일한 함의를 지닌다. 텔레비전이 세상을 투명하게 옮겨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텔레비전이 세상을 재현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과 틀이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전통적인 bbc의 방송 저널리즘이 영국 사회는 고위 공직자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유의 틀을 심어주었다면 itv가 새롭게 채택한 뉴스 생산 방식은 고위 공직자뿐만이 아니라 시민들 역시도 영국 사회의 주요한 행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contsmark5|
|contsmark6|
이런 측면에서 요즘 한국의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들은 누구인가란 질문이 중요해진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드라마에서는 재벌 2세의 연애담이 주를 이루고 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20대 젊은이들의 신변잡기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대다수의 블루칼라 노동자, 중장년층은 텔레비전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텔레비전이다.
|contsmark7|
|contsmark8|
이와 같은 한국 텔레비전의 전경 속에서 sbs의 <생활의 달인>은 한국 사회의 문화 다양성과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었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오랜 시간동안 숙련한, 그래서 달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이들은 기인이 아니다!)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mm 카메라는 스튜디오 안의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스튜디오 밖의 실재 삶의 현장을 담아낸다. 생수통 배달의 달인은 동시에 대 여섯 개의 생수통을 운반하고, 자판기의 달인은 음료수 11박스를 한 번에 등에 지기도 한다. 신문 배달의 달인은 1층에서 신문을 던져 고층 아파트의 현관 앞에 척척 신문을 배달한다. 이러한 달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숙련 노동의 숭고함이다. 언젠가부터 텔레비전이 배제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중장년층의 사회적 가치가 <생활의 달인> 속에는 살아있다.
|contsmark9|
|contsmark10|
물론 카메라의 시선이 ‘생활의 달인’을 대상화하고 있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겠다. 최근의 프로그램 아이템이 요식업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은 그 증거이겠다. 달인이 보여준 숙련노동의 사용가치를 언제든지 음식점에 찾아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교환가치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인이 흘리는 진짜 ‘땀’은 카메라의 대상화에 결코 포획되지 않을 것이다. 달인이 흘리는 ‘땀’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결코 눈요기를 위한 속임수, 가상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적 가치이자,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는 우리네 삶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contsmark11|
|contsmark12|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센터 운영위원|contsmark13|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