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 저주가 풀린 걸작
[경계에서] 이성규 독립PD
2009-12-21 이성규 독립PD
제22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단이 어떤 영화에 내린 평가 가운데 일부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이 영화’란 강경란PD가 제작하고 박봉남PD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언 크로우즈’다. KBS 5부작 다큐멘터리 <인간의 땅> 가운데 2부 ‘철 까마귀의 나날’이 바로 ‘아이언 크로우즈’다.
3년에 걸쳐 제작된 다큐멘터리 <인간의 땅>은 여의도 독립PD들 사이에서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어 왔었다. 그 저주받은 걸작의 한 가운데엔 강경란PD가 오롯이 서있었다. 제작에서 종방까지 4년이란 기간 동안 강경란PD는 제작자겸 연출자로 지내면서 그의 머리가 하얗게 샜다. 8억원이란 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땅>을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숭고한 존엄성에 의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다 보니, 돈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집은 저당 잡혔고, 그래도 모자라 가족의 재산을 징발(?)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요즘 빡빡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웃음을 띠고 있다. <인간의 땅> 5부작 가운데, 그가 직접 연출한 ‘서바이벌즈’와 박봉남PD가 연출한 ‘아이언 크로우즈’가 지난 11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영화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아이언 크로우즈’는 한국 사상 최초로 본선에 노미네이트되어,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대상을 걸머쥐었다.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즉 IDFA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연출하는 이들에겐 꿈의 영화제다. 일생에 단 한번만이라고 IDFA의 스크린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 하는 영화제다. 세계적 권위도 권위지만, 전 세계의 방송사와 영화의 커머셔너들이 그곳으로 몰린다. 권위와 시장을 동시에 갖춘 영화제가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다.
안에서 막힌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경우는 있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인간의 땅>은 안에서 샌다고 박대당했지만, 밖에선 맑고 깨끗한 물을 잘 담았다는 최대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의 방송 권력이 유럽의 인텔리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안에서 저주받은 걸작이 밖에서 그 저주가 풀어졌다. 이게 우리의 방송 현실이다. <워낭소리>의 데자뷰가 다시 재현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