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고급문학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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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고급문학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하며
김정란
시인, 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1999.02.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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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언론 개혁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폭넓은 공감을 얻어 가고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나마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언론개혁은 각 언론사의 정치적 객관성의 확보이다. 그러나 문화 분야의 개혁 역시 정치 못지 않게 시급하다. 왜냐하면, 현대의 문화는 삶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지금 우리 나라 대중 매체들의 문화 프로그램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서 한국의 문화 환경은 급속하게 바뀌었다. 대중문화가 점점 더 중심으로 밀고들어와 지금은 아예 문화 전체를 장악해 버렸다. 문화의 대중화는 세계 전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서 그 현상을 부정할 수도 없으며, 부정하는 것이 온당하지도 않다. 대중문화의 부상은 문화를 독점해 왔던 엘리트의 손으로부터 대중이 문화 권력을 빼앗아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틀즈와 우드스탁, 그리고 프랑스 68 학생 혁명은 부르주아 엘리트 문화에 대한 대중문화의 승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경우들이다. 이제 대중문화는 무시할 수 없는 탈근대의 지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대중문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과연 대중문화가 대안문화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대중문화는 그것이 처음 출발하던 당시의 현실 비판성과 혁명성을 견지하고 있는가? 그것은 오히려 현실과 지나치게 은밀한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럼으로써 대중을 각성시키기보다는 잠들게 하는 데 종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대중문화는 지금 너무나 잘 팔리고 있다. 그 결과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제 가난하고 힘없는 것은 오히려 고급문화이다. 90년대에 들어 가장 고생하고 있는 고급 문화 장르는 아마도 순수문학일 것이다. 그것은 사방에서 치고 밀려서 이제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작년 11월 ‘월간조선’에서 작가들이 받은 대접은 한국사회가 지금 작가들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마요네즈’의 기사와 프로그램을 보면서 또다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영화 ‘마요네즈’는 원작자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도 김혜자와 최진실의 작품인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그 영화의 원작자가 전혜성이라는 젊은 여성 작가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배우들 자신도 원작자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아예 머릿속에 원작자의 이름이 입력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영화광고에마저 원작자의 이름 한 글자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작가의 영혼을 도둑질하는 짓이다. 한 사람의 작가가 한 편의 작품을 쓸 때 얼마나 고통스럽게 쓰는데, 그것을 그렇게 자기들 물건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되게 된 데에는 매스컴의 책임이 크다. 작가에게 돌아갈 영광을 뒷전에 치우고 배우들만 쫓아다니는 것이다. 의식이 없기는 배우나 기자나 pd나 다 똑같다. 작가를 이렇게 대접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 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90년대에 들어 문학의 위상이 갑자기 떨어진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문학 자체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대중문화만 쫓아다니는 매스컴의 책임이 크다. 그런 식으로 당장 먹기 좋은 것, 금방 이해되는 것만 매개를 해왔기 때문에 대중은 조금만 어려워도 도리질을 친다. 그리곤 멍하니 앉아있어도 이해될 수 있는 것만 쉽게 소비한다. 인스턴트 식품을 소비하듯이 문화도 인스턴트로 소비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대중의 생각하는 능력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가 그때그때 즉각적인 만족을 줄 뿐, 미래를 개척하는 능력을 배양시켜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문화는 현재를 이해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견하는 기능을 아울러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 사회는 비전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 비전의 제시는 아무래도 대중문화보다는 대중과 거리를 두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수문화의 몫이다. 이대로 두면 우리 나라의 순수문화는 몇 년 안 가 다 무너질 것이다. 특히 문학은 더욱더 빨리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그 어느 장르보다도 더 종합적인 방식으로 인식을 계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문학이 무너진다는 것은, 한 나라의 최고의 인식기능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방송매체들이 소명감을 가지고 고급문학을 대중과 연계시켜주어야 한다. 고급문학 생산자들은 돈과 명예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작업이 적절한 방식으로 꾸준히 매개되는 것뿐이다. 지금 당장은 시청률이 떨어지더라도 꾸준히 계몽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대중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고급문학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대중의 사랑을 받을 승산도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처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성의 없게 만들지 말고(그나마도 모두 없어졌지만), 정말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 보기 바란다. 왜 대중이 환호하지 않겠는가. 매주 방송하는 것이 힘들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면 tv에 실망하고 떠난 시청자들도 돌아올 것이다. |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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