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음악이야기 ④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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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음악이야기 ④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음악과 빗소리 … 중년 남녀의 영혼의 이중주
  • 관리자
  • 승인 2007.02.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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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음악은 극중의 분위기를 좌우하며, 때때로 영화자체보다도 관람객의 주목을 끌기도 하는 주요 요소다. 그러나 가끔씩 영화를 보다보면, 충분히 나설 수(?)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뒤에서 극중 분위기를 이끌어 내고 있는 아주 겸손한 음악의 존재를 발견하곤 한다. 어찌나 겸손한지 영화를 보고 난 뒤, 곧바로 그 음악을 다시 들려줘도 해당영화와 멜로디를 잘 깨닫지 못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음악은 별 가치가 없는, 언제든지 다른 음악과 대체가 가능한 정서의 소모품일까? 영화보다도 더 사랑받는 수많은 영화속 OST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조차도 인정받지 못하는 몇몇 음악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얼마 전 필자는 우연히 한 공연 기획자와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분의 말씀 중에 무척 공감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거장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속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거장을 거장답게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작품 속에서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자꾸만 덜어내는 겸손함에 있었다. 자신을 지나치게 꾸미거나 드러내지 않는 자신감! 흔히들 프로그램을 제작하다보면 자신이 전달하려는 바를 중언부언 표현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도대체 내가 말하려는 바를 시청자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연출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어가는 것일까 하는 우려로 인해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행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던 필자로서는 그야말로 손을 탁 치게 하는 지적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메시지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수수하게 녹여낼 수 있는 여유! 어쩌면 자기표현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이렇듯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방식은 다소 생소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허나 만약 그 방식이 꼭 필요한 그 무엇만을 남긴 채 다 덜어낸 방식이라면? 그래서 어느 하나만 빠져도 골격이 무너지고 마는 완벽한 체계라면 어떨까? 나는 일찍이 모차르트 음악이 지나치게 장식적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의 작품은 꼭 필요한 음들로만 구성되어져 있어서 음표 하나만 빠져도 바로 무너지고 마는 최고의 건축물에 비견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의 집합체가 바로 작품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축 일지도 모른다. 스크린 속 음악에 있어서도 종종 그러한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은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기억하는가? 느지막 찾아온 중년 남녀 간의 사랑! 어쩌면 불륜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사랑을 거북스럽지 않게 만드는 건 바로 두 주연 배우-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의 완벽한 호흡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폭발적인 상황을 너무나도 절제된 방식으로 담담히 전해내는 영화 속 음악과 OST들이 더해져, 오히려 보는 사람의 감정을 사정없이 후려내고 마는 강단을 발휘하고 만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오후, 상점 밖 차안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와의 조우 장면! 생각 만해도 넋이 나갈 지경이다. 그리고 그 화면 안에는 둘의 분위기를 온전히 지켜주려는, 드러나지 않는 음악이 있었다.

음악과 빗소리가 어우러져 아무 대사도 없는 그 장면에서 우리는 천 마디 말보다도 더 값진 두 남녀의 영혼에 주목 할 수 있다. 영화 속 음악은 더 큰 연주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겸손히 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초대형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큰 울림을 주는, 두 중년 남녀의 영혼의 이중주! 너무나도 아름답다 못해 마구 소리 내 울어버리고 싶은 이 장면 앞에서 필자는 한숨만이 나올 뿐이다. 이쯤 되면 말이 필요 없을런지도 모른다. 화면 안에 담긴 음악과 빗소리는 두 영혼의 소통을 도와주는 자연스러운 울타리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나이가 들수록 아껴두고 보고 싶은 장면이다.오한샘PD(EBS 교양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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