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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판결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관리자
  • 승인 2007.02.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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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 사건. 유신시절, 대법원에 의해 사형이 언도되고 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사법살인’. 결국 30여년이 지난 2007년 인혁당 사건은 재심을 거쳐 현 사법부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필자 나이만큼이나 긴 역사적 질곡을 지난 인혁당 사건의 유가족들을 보면서, 또 당시 인혁당 사건과 관련 있는 이런 저런 사람들의 해괴한 발언들을 보면서, “왜 우리 사회는 비이성적인 과거에 대해 반성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찌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되자 그 재판을 지켜보면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글을 당시 뉴요커에 연재한다. “왜 아이히만은 수 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도 자신의 악행을 깨닫지 아니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성찰한다. 유대인 학살을 열정적으로 실행에 옮긴 아이히만에 대해 그가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적이 없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아이히만은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명령 받은 일이란 물론‘수 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열정과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일’을 말한다.

명령 받은 일에 대한 판단이 절대적이었던 아이히만. 자신의 언어가 없었고, 그러니 자신의 생각도 없었으며, 결국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인간이었다. 시스템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여 개인의 양심조차 작동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많은 유대인들이 악인으로 묘사하고 싶어했던 아이히만에 대해 아렌트의 이례적인 해석은 당시 엄청난 반발을 샀지만, 결국 아렌트의 성찰은 파시즘과 현대사회의 야만성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인정받았다.

명령 받은 일이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는 아이히만. 인혁당 사건의 재심과 이후 벌어진 정치적인 논쟁을 바라보며, 아이히만의 모습이 겹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만약 그들에게 양심이라는 게 있었다면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는 발언이 그토록 쉽게 나올 수 있을까? 혹 당시에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하더라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양심의 고백’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은 또 무엇인가?

인혁당 재심으로 인해 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억압적인 시스템과 자신의 판단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패배하며 시대를 견뎌냈던 수많은 양심들은 이제 조금은 마음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유신의 망령이 떠다니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인혁당 사건에 대한 냉철한 기록이 지금도 필요한 이유는 바로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시대의 ‘아이히만’들 때문일 것이다. 김 재 영MBC PD(시사교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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