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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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으로 10년만에 현업 복귀한 유길촌 PD
SBS PD협회 신임 회장 구본근 PD
평화방송 PD협회 신임 회장 박군수 PD
아침생방송 터줏대감 송기윤 PD
  • 승인 1999.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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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할 수 있는 드라마는 따로 있을 터”<동행>으로 10년만에 현업 복귀한 유길촌 PD“감개무량하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그저 재밌고 신났다.”최근 MBC특별기획 <동행>(2월 14일 밤 10시 35분 방송)으로 현업 복귀를 알린 전 MBC미술센터 사장 유길촌 PD의 10년만의 연출소감이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은, 변화가 느린 시대의 속담일 뿐, 2∼3년의 공백을 메꾸기도 쉽지 않은 요즘, 경영 일선에 서 있던 PD가, 더군다나 60이 넘은 나이에 이 치열한 ‘현장’에 복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연출에 윤기가 오를만하면 책상에 앉아야 하는 우리 방송 현실에서, 유길촌 PD의 현업 복귀는 손으로 꼽을 만한 ‘대PD’를 생각나게 하지만 유 PD는 극구 그 호칭을 사양했다. “작품은 연출가의 시각, 즉 무엇을 노리고 만들었나가 중요하다. 오히려 젊은 세대와 경쟁관계이지 단지 나이많은 선배라고 해서 ‘대PD’라고 불리는 것은 우습다.”그가 만든 작품 <동행>은 어렸을 적 친구였으면서도 원수가 되어 쫓고 쫓기며 평생을 살아온 빨치산 출신 도망자와 경찰 출신 추적자의 평생에 걸친 추격전을 담은 것으로 6.25 직후부터 현재까지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뤘다. 코믹터치, 아기자기한 소품, 멜로나 트랜디가 주류인 드라마 경향에서 <동행>은 한참 벗어나 있는 셈이다.“역사적으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사회문제가 담긴 작품을 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동행>과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 즉 분단된 조국이 어떻게 통일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싶었다.”유길촌 PD가 10년만의 컴백작품으로 <동행>을 택한 이유다. 그는 20대의 감각으로 20대에 해야할 작품이 있고, 60대에 해야할 작품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유 PD는 또 그의 나이가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아니’라고 부인했다.“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인생의 맛을 아는 나이라 연출하는 것에 진득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주변에서 더 우려를 많이 하더라.”그는 번듯한 ‘사장’ 직함을 버리고 기꺼이 불확실한 프리랜서 PD를 택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벌판에 서 있는 듯한’ 이 상황을 ‘시류에 아부하는 드라마’가 아닌 ‘시청자들을 끌어내는 드라마’로 정면승부하겠단다. 예전에는 ‘살인감독’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함께 일하는 스탭들과 계속 토론하며 ‘합일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며 유 PD는 이것이 나이 들어 생기는 ‘여유’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제 다시 후배 PD들과 제작일선에서 따뜻하게 ‘동행’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 유길촌 PD. 그의 행보에 기대를 건다. <이서영>후배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타고난 방송장이’ SBS PD협회 신임 회장 구본근 PDSBS PD협회장으로 취임한 드라마 PD 구본근 차장. 좀처럼 술을 안마시는 그를 간신히 꼬드겨 그의 속내와 인생유전을 듣고 싶었다.-형은 왜 PD라는 직업을 택하셨어요?“졸업하고 MBA유학을 가려고 결심했지. 근데 돈이 없는거야. 빈둥빈둥 TV보면서 세월을 죽치고 있는데 무슨 PD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난거야. PD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영화감독보다 더 끗발있는 거’라고 친구가 그러더군. 그 한마디에 혹해서 86년 MBC에서 방송장이의 길을 시작했지.”(본인은 한사코 부인하지만 필자가 볼 때 그는 ‘내츄럴 본’ PD다. 그는 지금도 부서 내 조연출 그룹에서 가장 같이 작업하고 싶은 선배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형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우리 아버지지. 우리 아버지가 참 경제적 무능력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되니까 알겠더라구. 당신께서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맘고생 몸고생하셨는지….”(폭력과 권위와 비상식이 난무했던 이 땅에서 그저 선량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들. 그 아들과 딸들의 남루함이야말로 그가 건낼 수 있었던 가장 정직한 삶의 흔적이 아니었을까….)-형의 대학시절은?“나? 데모 많이 했지. 내가 왜 데모를 그만둔지 아냐? 하루는 교투(校鬪)를 하는데 내가 던진 돌이 바로 사복경찰 뒤통수를 강타한거야. 피가 솟구치더니 그 자리에서 폭 쓰러지더라구.” (평화주의자, 합리주의자, 중용주의자인 그가 돌을 던지다니?) -PD협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계획은?“작은 것부터 싸워나가야지. 노조가 이제 막 출범했으니 큰 싸움은 노조에 맡기고. 이를테면 일산제작센터 자동차 십부제. 출근하지 말란 소리지. 그리고 드라마 예능 교양 각 부문 간 서로 너무 닫혀 있어. 서로의 얼굴도 잘 모르니…. 시너지 효과를 낼 영역들이 분명히 존재할텐데…. 우린 너무 서로 잘났다 하고 살았는지 몰라. 대본 뭉치를 들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영락없이 교수님이다. 그냥 교수가 아니라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부당한 현실에 개입하는 그런 살아있는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님. 이제 막 노조가 출범한 SBS에서 PD협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그의 활약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손정현SBS 2CP“어려운 때일수록 PD는 PD다”평화방송 PD협회 신임 회장 박군수 PD“PD는 PD이고 싶다. 어려운 때일수록 PD는 PD이고 싶다.”제3기 평화방송프로듀서협회 회장직을 맞으면서 그가 한 말이다.교사직을 그만두고 프로듀서란 직업을 택하게 된 동기를 묻는 말엔,“잘만 한다면 교단에서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방송에 매력을 느껴서…”라고 겸손하게 대답하지만 방송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남다르다.교회음악 프로그램인 <교회음악으로의 초대>를 담당할 때건, 이나 <시간의 흐름 속에> 같은 대중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건, 현재 맡고있는 클래식 프로그램 <평화 음악실>에서건 늘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이기를 고집했고, 또 실제로 그래왔던 그가 어려운 때일수록 프로듀서이기를 고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대중문화의 올바른 형성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듀서로서의 자긍심과 책임의식이 그로 하여금 하는 일에 늘 최선을 다하게 하는 촉매제 구실을 하는 것 같다.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밤늦은 시간에도 다음날 아침 방송 선곡을 위해 이어폰을 귀에서 뗄 줄 모르는 그이지만 자주 집에 전화를 걸어 어린 두 아들의 저녁식사 여부를 챙기는 자상함 또한 그가 지닌 매력이다.그런 섬세함과 일에 대한 치밀한 열정이 있기에 항상 폭넓은 인간관계와 선후배사이에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평화방송 공채 1기로 처음 방송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10여 년 동안 평화방송 사태를 비롯한 어려운 역경과 고비를 넘겨오면서 평화방송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나름대로 고민한 것들을 선후배 프로듀서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박군수 PD가 압도적인 표차로 회장에 선임된 이유는 어려운 방송환경 속에서 평화방송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하는데 평화방송PD협회가 작으나마 힘이 될 수 있게 잘 이끌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이다.“PD는 PD이고 싶다.어려운 때일수록 PD는 PD이고 싶다.”어려운 때일수록 프로듀서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오던 믿음직한 선배이기에 제3기 평화방송 PD협회장으로 당선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후배로서 자그마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희망해본다.박종인PBC 제작부뚝심과 열정! 그것은 하나다설날특집 <아! 백두산…> 연출한 아침생방송 터줏대감 송기윤 PD내가 송기윤 PD를 처음 만난 것은 4년전의 일이다. 얼굴 전체가 화상을 입은 듯이 검게 타서 피부는 부풀어 올랐고 눈만 하얗게 말똥말똥 뜨고 있는 모습이 마치 만화에서 봤던 ‘너구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습의 그가 프로듀서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국내 프로듀서로서는 최초로 40일간의 남극탐험에 동행취재했었고 그 당시에는 남극의 하얀 눈에 얼굴이 심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후의 얘기다.그리고 내가 이 사람을 다시 만난 것은 3년전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KBS 2TV <아침을 달린다>)으로 오고 나서였다. 3년이 지난 지금, 사실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밤을 새며 아침 프로그램 3년을 같이 했으면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여러 가지 일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남극동행취재만 해도 그렇다. 40여일간의 남극탐험, 그것은 고도로 훈련받은 탐험대원들에게조차도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턱없이 약한 체력(?)의 프로듀서에게는 애초에 무리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는 뚝심 하나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남극취재를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쳤고 방송 또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지난 겨울 그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천황은 백제인인가’라는 역사서를 출판한 것이다. 수십년간 그 분야만 연구해 온 학자도 어려워하는 것을 그는 7년에 걸친 연구, 각종 유물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고찰로 천황은 백제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의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줄로 안다.마지막으로 그가 가장 최근에 보여준 일에 대한 열정은 후배 프로듀서인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지난 설날 연휴기간 중 방영된 다큐멘터리 교양프로그램으로 탐험대장 허영호가 눈에 덮힌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올랐던 설날특집 <아! 백두산, 걸어서 천지까지>의 제작과정에서 그는 밤샘 편집과 아침 생방송으로 녹초가 되어버린 몸으로도 퇴근을 미루고 편집하고 회의하고 원고를 검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으르고 일상에 지친 나같은 후배가 보기에는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올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3년을 그와 같이 일해왔지만 아직도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그는 언제 어떻게 우리를 또 놀라게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그가 우리를 놀래키는 것을 기다린다. 그것은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놀라움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유한주KBS TV2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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