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지난해 편성 틀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봄·가을 개편을 단행했다. 봄 개편 때는 아침드라마를 오전 9시에서 오전 7시 50분으로 과감하게 옮겼다.
11월 가을 개편에서는 10년 넘게 고정된 오후 8시 30분 일일 드라마를 오후 7시 50분으로 전격 배치했다. 기존 일일 드라마 시간에는 가족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신설했다.
MBC 창사 이래 ‘가장 파격적이다’ 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번 개편을 주도적으로 이끈 이는 이보영 편성기획부장이다. “MBC가 편성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오후 8시 30분 일일드라마가 더 이상 광고 없는 KBS1과 경쟁할 수 없었다. 가족시트콤은 MBC에서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장르였지만 지는 싸움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개편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각 국과 수십 번의 협의를 통해서 결정됐다. “개편을 진행할 때마다 ‘실패하면 모두 책임을 지겠다’ 는 다짐을 스스로 여러 번 해야 할 만큼 힘든 과정이었다.
아침 드라마 시간대를 옮기는 것은 6개월 넘게 논의한 결과다. 설문조사를 해 보니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는 60~70%의 사람들이 아침 7시 50분으로 옮겨도 드라마를 보겠다고 말해 옮기게 됐다.”
가을개편 설문조사에서는 청춘시트콤보다 가족시트콤에 대한 시청자의 요구가 높았다. 가을개편까지 마무리 된 지 2개월 정도가 지났다. 개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는 평균 시청률 15%로 아침드라마 시간대 주도권을 잡았고, 가족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최근 20%까지 시청률이 올랐다.
편성기획부장으로 발령받은 2005년은 이 부장에게 입사 이후 최대 위기였다. 황우석 사건, 상주 참사 사건, 카우치 사건 등 악재가 겹치면서 시청자들은 MBC를 외면했다.
“당시 꿈에서 회사에 출근을 하지 못하고 회사 반대편으로 뛰어가는 꿈을 자주 꿀 정도로 힘들었다. 시청률은 바닥이었고 광고주도 MBC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편성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이 부장은 1986년 편성 PD로 입사해 편성기획부에서만 11년을 근무한 편성 전문가다. “편성기획은 프로그램 모니터, 시청률·시청층 분석, 프로그램 캐릭터 등 구성 요소 분석 등의 일을 한다. 이 업무가 제대로 자리가 잡힌다면 MBC 채널 이미지는 높아질 수 있고 시청자는 MBC를 볼 것이다. 그 점이 바로 나의 보람이다.”
그래서 이 부장은 편성 PD가 갖춰야 할 첫 번째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꼽는다. 또 하나는 보고서 작성능력이다. “편성기획부는 MBC 구성원으로부터 친밀감과 신뢰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편성기획부원들은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제작진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 서로 갈등만 키울 수 있다. 논리적인 프로그램 분석을 통해 제작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장은 편성기획부장으로 발령받으면서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편성기획부가 ‘PD들의 사랑방’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채널이 많아지면서 편성의 영역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편성기획은 제작진에게 가장 효율적인 선택과 방법을 제시해 시청자들이 MBC를 많이 보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대해 어떤 문제든 상의해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이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