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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더럽고 슬픈 일 …”

|contsmark0|드라마 <청춘> 표절 파문이 심각하다. 오래된 프로그램도 아닌 바로 지난97년을 풍미했던 일본 후지 tv의 <러브 제너레이션>에서 주요한 플롯은 물론 세트, 카메라 샷, 소도구까지 옮겨왔다니 정말 해도 너무 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시작이 다른 날도 아닌 3.1절이라는 것에서 더욱 분노하며 pc 통신을 달구고 있다.모방과 표절 시비에는 이력이 만만찮은 우리 방송. 전과가 자못 화려하다. 그리하여 블랙리스트가 공개되고 ‘모방 낙원’, ‘표절 천국’이 거론되기에 이른다. 고약하게도 <청춘> 파문이 극에 달한 시점에 같은 방송사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한국영화의 해묵은 표절 논란을 샅샅이 들추어내는 바람에 ‘후안무치죄’까지 덤터기 쓰고 말았다. 비등하는 질책에 mbc는 16부작으로 예정됐던 프로그램을 10부로 줄이는 고육책을 동원했다. 급기야 애꿎은(?) 신임 사장의 취임 기자회견에까지 이와 관련된 질문이 등장해 사과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쇄도하는 내외의 후매에 연합회도 성명을 내고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있다. 가로되, “우리는 이같은 사태에 깊이 반성하며 방송을 사랑하고 아껴주셨던 시청자 여러분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긴 것에 대해 충심으로 사과드린다. (…) 방송을 포함한 우리 대중문화계 전반에는 창의적인 소프트웨어에 대한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보다는 치고 빠지기식의 베끼기와 한탕주의가 횡행하는 등의 풍토가 분명히 있었다. 이 와중에 표절과 모방에 대한 불감증이 조장됐고, 일부는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안주하거나 편승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 어떤 제도와 환경의 미비를 앞세우기 이전에, 창의성과 성실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야 할 프로듀서에게 표절과 모방은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을 확인한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가뜩이나 ‘방송 때리기’가 발호하고 방송에 대한 불신이 미만하는 이 시점에 이런 일이 나오니 안타깝기만 하다. <청춘>을 두고 모 인사는 ‘한국 방송의 자살골’이라고 했는데 그는 정녕 “모방은 자살이다”는 에머슨의 경구를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물론 연합회는 자성의 발언 언저리로 ‘꿈틀’하는 말을 하긴 했다. 우리 방송의 표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벽돌 공장 식의 다량 생산 방식, 하루살이식의 당일치기 방송, 게다가 창의적인 내용을 만들어내기 위한 투자에는 인색했던 방송사의 타성, 말뿐인 프로그램 전작제, 결과만을 중시하는 천민성이 한데 어우러진 구조적인 문제임을 지적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반지빠르고 계면쩍다. 아무리 사정이 열악해도 모방과 표절없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더 많다. 순백의 창작혼은 그럴수록 불타 오르는 법이다.필자는 이번의 <청춘> 파동이 우리 방송의 모방과 표절 시비를 철저하게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 동안의 어떤 표절 논란도 이보다 더 ‘극적’이지는 않았다. 이제는 적어도 대놓고 베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제작자 개인의 양식으로만 돌리고 끝나버리면 교훈은 없다. 단 한 프로그램에서라도 전작제가 시행됐으면, 아니 다만 3 개월분이라도 사전 제작을 해 놓고 들어갔으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겠다는 한 중견 드라마 프로듀서의 토로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막말로 똑같이, 많이, 빨리만 찍으면 ‘장땡’인 벽돌 공장에서 누가 모방과 표절을 탓하겠는가. 돌이켜 보면 모방은 한국 방송의 원죄이자 업보다. 이양선(異樣船)을 타고 온 박래품(舶來品)임이 틀림없는 라디오와 텔리비전. 그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는 거의 필연적으로 ‘보고 베끼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프로그램인들 외국의 그것을 원전으로 두고 있지 않으랴. 과거의 어느 한때 우리 국민들은 왜 한국 방송은 미국과 일본의 원조(元祖) 프로그램처럼 못 만들어내는지 질책하기도 했었다. 방송만이 아니다. 중단없는 전진을 내세우던 그 시절의 신화가 무엇을 기반으로 두고 있었는지는 이태원에 가보면 다 알 수 있다. “아시아 국가에서 근대화는 곧 서구화”로 간주되던 그 시절 우리는 선진 외국의 제도와 제품을 얼마나 빨리 들여와 베껴 내는지가 최고의 미덕이었다. 그 시대의 잔영이 지금 우리를 망녕처럼 에워싸고 괴롭히는 것이다.이제 그 덫에서 헤어날 때가 됐다. 시대도 바뀌고 패러다임도 변한다. 어제까지 통했다고 오늘도 내일도 통하란 법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도구적 기능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문화의 창조자가 될 것인가는 프로듀서 자신에게 달려 있다. 문득 닥종이 예술가 김영희의 말이 떠오른다. “모방은 더럽고 슬픈 일입니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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